아쉬웠다. 주도권을 잡았지만 터지지 않은 골. 하지만 상대는 B조 최강으로 평가받는 멕시코였다. 0대0의 스코어는 불만이지만, 썩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그보다는 더 큰 희망을 봤다. 격이 다른 기성용(셀틱)이 있었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몸도 가볍지 않았다. 기성용은 7월 2일 파주 NFC에 합류할 당시 재활조에서 따로 훈련을 했다. 지난 6월 12일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레바논전에서 허벅지 부상을 하고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네 번째 허벅지 부상이었다. 홍명보호 적응도 관건이었다.
기우였다. 모의고사에서 만점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14일 뉴질랜드(2대1 승), 20일 세네갈(3대0 승)과의 평가전은 그를 위한 무대였다. 2경기에서 1골-2도움으로 홍명보호의 키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명불허전이었다. 유럽 빅리그에서 주목받는 이유가 있었다. 클래스가 달랐다.
기성용은 런던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인 26일 멕시코전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전반부터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의 중원을 장악했다. 멕시코의 역습 장면에는 그가 있었다. 1m 거리에서 깊게 들어오는 강력한 태클에 멕시코의 역습은 갈길을 잃었다. 박주영(아스널) 김보경(세레소 오사카) 남태희(레퀴야)가 공격의 물꼬를 틀지 못하자 직접 최전방에서 멕시코 수비진을 유린했다. 3~4명을 제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키운 몸싸움 능력이 영국 뉴캐슬에서 발휘된 순간이다.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송곳같이 찔러주는 패스는 오차가 없었다. 코너킥의 각은 날카로움을 더 했다.
기성용의 진가는 후반 10분 정점을 찍었다.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벼락 득점에 성공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구자철이 뒤로 내줄 볼을 아크 정면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 멕시코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골키퍼의 선방이 없었다면 홍명보호의 산뜻한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었다. 1인 4역을 거뜬히 소화했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는 또 달랐다. 당시 막내로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3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은 1승1무1패로 조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기성용은 최근 "2008년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다. 그저 뛰기에 바빴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유망주였다. 박지성(QPR) 이영표(밴쿠버) 김남일(인천)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가렸다. 사상 최초 원정 16강에 진출한 역사의 현장에 있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한국 축구의 유망주를 비쳐주지 않았다.
2012년, 그의 주소가 바뀌었다. 유망주 꼬리표를 뗐다. 유럽 생활 2년 6개월만에 그는 클래스가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 올림픽대표팀을 넘어 한국 축구를 이끌 기둥으로 우뚝섰다. 멕시코전에서 실력으로 직접 증명했다. 그의 발끝에 홍명보호의 명운이 달렸다. 이적을 준비 중인 그의 미래도 달렸다. 유망주의 보고인 런던올림픽 현장에는 유럽 리그 스카우트들이 대거 몰려온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