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쿼터 시작 10여 분만에 안익수 성남 감독이 서효원 수석코치를 통해 교체지시를 내렸다. 14일 오후 3시 3쿼터로 진행된 광운대와의 연습경기에 이승렬을 투입했다. 4-4-2 포메이션에서 김동섭과 투톱으로 나섰다. 안 감독은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매의 눈'으로 경기를 주시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둔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곧바로 교체 사인이 떨어졌다. 실전보다 더 치열했던 연습경기 직후 안 감독은 이승렬을 따로 남겼다. 축구공 10여 개와 함께 그라운드 한복판에 불러세웠다. '나머지 공부'였다. 공을 드리블하며 양쪽 골대를 번갈아, 셔틀런하듯 달렸다. '무한반복' 슈팅연습, 스피드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가차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라운드를 왔다갔다 하며 100차례가 넘게 슈팅을 날렸다. 땀범벅이 된 이승렬이 헉헉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야! 빨리 안 뛰어!" '호랑이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라운드에 쩌렁쩌렁 울렸다. 극한까지 몰아세우는 독한 '나머지 공부'는 해가 떨어지고나서야 끝이 났다. 선수단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 안 감독과 땀으로 흠뻑 젖은 이승렬이 스태프 차량에 동승했다. 안 감독이 중얼거렸다. "서울 있을 때 반박자 빠른 슈팅에 반했었는데…. 승렬아, 그때 얘기 나눴던 거 기억나냐?"
안 감독와 이승렬은 지난 2010년 FC서울에서 최고의 시즌을 함께했다. 수석코치와 선수로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짜릿한 순간을 함께했다. 그 시절 이승렬은 '동급 최강'이었다. 19세이던 2008년 첫시즌에 31경기에서 5골1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른 이후 승승장구했다. 2010년 리그 '10골 6도움'의 최고 활약을 펼치며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1년, 19경기 1골, 2012년 14경기 2골1도움의 슬럼프는 그래서 더 아팠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서울에서 영광의 4시즌을 보낸 후, 5년차에 새로 만난 팀 감바오사카, 울산에서 자리잡지 못했다. 그라운드와 멀어지면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2010년까지는 모든 걸 누려왔기 때문에 허영심도 있었고, 자만에 빠져 있었다. 2008년 리그 데뷔할 때를 생각해보면 동계훈련을 정말 충실히 했었다. 2010년 이후 동계훈련을 만족할 만큼 하지 못했던 것이 부진의 이유"라고 스스로 분석했다.
이승렬은 축구인생의 기로에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성남행을 결정했다. 올시즌 '슬럼프 탈출'의 무대로 성남을 택한 건 "100% 안 감독님 때문"이다. "감독님은 저를 잘 아시고, 저를 다시 좋은 선수로 만들어줄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계훈련에서 초심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날 '나머지 공부'를 하며 땀과 눈물을 쏙 빼고 나서도 스승에 대한 섭섭한 마음은 없다고 털어놨다. "난 성남에 오면서 모든 걸 다 내려놨다. 나를 위해 시키신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감사했다. 훈련 끝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프로는 냉정하다. 선수가 좋을 때는 잘써먹지만, 침체기가 오면 돌아보지 않는다. 부족한 나를 이끌어주는 감독님의 관심에 감사한다. 선수가 매년 좋은 기량을 보여줄 수는 없다. 지도자가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따라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같다."
이승렬은 올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간의 맘고생이 전해지는 진솔한 답을 내놨다. "시즌이 시작되면 저 선수가 그라운드를 뛰고 있구나 하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 '친정' 서울과의 맞대결에도 기대감을 표했다. "서울은 지금껏 나를 키워준 팀이다. 서울 팬들 앞에서도 올시즌엔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16일 오전 이근호 이재성 김재성 백지훈 김형일 최철순 등 초호화멤버가 출동한 상주상무와의 연습경기, '호랑이 감독'의 '나머지 공부' 효과가 빛을 발했다. 2쿼터 중반 이승렬은 페널티박스안에서 파워풀한 단독돌파로 수비수를 벗겨낸 후 통렬한 오른발 슈팅으로 완벽한 선제골을 꽂아넣었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