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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년 전인 2003년 여름. 러시아의 한 석유재벌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니 유럽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았다. 주인공은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아브라모비치는 고아였다. 그의 부모는 아브라모비치가 4세때 러시아 정부의 권력싸움에 휘말려 숙청당했다. 권력싸움에 몰락한 가문의 고아였으나, 아브라모비치는 어릴적부터 빼어난 사업수완을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구 소련의 몰락은 아브라모비치에게 기회가 됐다.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 인수합병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다. 석유회사를 비롯해 알루미늄, 천연가스 등 대기업을 거느리게 된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를 넘어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대재벌로 성장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채 40세가 되지 않았다.
돈의 힘은 무서웠다. 인수 첫 해였던 2003~2004시즌을 2위로 마친 첼시는 포르투를 유럽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끈 '스페셜원' 조제 무리뉴 감독을 데려오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2004~2005시즌에 50년만에 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005~2006시즌에는 리그 2연패에 성공했고, 그 다음시즌에도 FA컵과 리그컵 우승을 일궈냈다. 첼시는 맨유와 아스널이 주도하던 EPL의 판세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브라모비치는 감독의 고유권한을 무시하던 다른 거부 구단주들과 달리 2선에서 지원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의 계속된 실패는 아브라모비치를 변하게 했다. 그는 '빅이어(유럽챔피언스리그 트로피)'에 대한 집착으로 잦은 감독 교체라는 악수를 이어갔다. 무리뉴 감독의 사임을 시작으로 아브라함 그랜트, 펠리페 스콜라리, 거스 히딩크, 카를로 안첼로티,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 로베르토 디 마테오, 라파 베니테스까지 9년간 무려 7명의 감독을 바꾸었다. 그러나 잦은 감독 교체에도 불구하고 첼시는 꾸준히 성과를 이뤄냈다. 지난 10년 동안 첼시는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리그 우승을 비롯해, 리그 우승 3회, FA컵 우승 4회, 유로파리그 우승 1회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 기간동안 첼시 이상의 성적을 거둔 팀은 리그 4회와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의 맨유 정도다. 전유럽으로 범위를 넓혀도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정도 밖에 견줄 팀이 없다.
아브라모비치가 써내려갈 미래는?
첼시는 지난 10년의 영광을 뒤로 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올시즌을 앞두고 인터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공을 이어간 무리뉴 감독과 '재혼'에 성공했다. 무리뉴 감독은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팀을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리뉴 감독은 "내가 과거에 이룬 성과를 존중받고 싶지만 내가 앞으로 해나갈 것에 대해서도 사랑받고 싶다. 예전보다 안정감을 갖췄기에 이제는 오랫동안 팀을 지휘할 준비가 됐다. 첼시를 오래 이끌 자격이 있는지는 내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브라모비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첼시 사장인 론 굴레이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유소년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굴레이는 "아브라모비치의 초기 투자 방향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스태프들을 데리고 위대한 팀을 만드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제 우리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팀 내부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유소년 시스템 강화는 장기적인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축구산업을 바꾸어버린 아브라모비치가 써내려간 10년은 '영광'이었다. 아마도 그의 10년이 남긴 것은, 성공의 조건은 돈 뿐만 아니라 열정이라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