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 축구 역사의 가장 큰 영광이자 환희였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 축구 강호를 연파하며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신화를 이룩했다. 히딩크의 걸작품 중 하나로 김남일을 꼽을 수 있다.
부평고교 1학년 때 축구가 힘들다는 이유로 가출했다가 부친의 눈물의 설득 끝에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다시 시작한 김남일은 1995년 제34회 봄철 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이듬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표팀(U-19) 선수로 활약하며 전승으로 제30회 아시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히딩크 감독이 '흙 속에서 찾아낸 진주'인 김남일은 반칙만 잘하고 정교한 패스 등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저평가를 받았지만 2001년 8월 유럽 전지훈련을 앞두고 깜짝 발탁되었다. 김남일은 스페인 전지훈련 기간 열린 핀란드전에서 완벽한 플레이로 2대 0 승리를 도와 히딩크 감독을 놀라게 했다.
2002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김남일은 슈퍼스타 지단(레알 마드리드)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어느새 대형 선수의 반열에 우뚝 섰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과 강한 압박 능력, 상대를 마크하면 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지는 악바리 근성과 투지로 김남일은 '진공청소기'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의 예선 첫 경기를 앞둔 폴란드는 김남일을 뚫어야 승산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략법 연구에 공을 들이기까지 했다. 김남일은 폴란드의 전술을 비웃기라도 하듯 특급 골잡이 에마누엘 올리사데베를 완벽하게 차단, 한국이 월드컵에서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두는 데 이바지했다.
미국 및 포르투갈전에서도 상대 공격수들에 좀체 공격 루트를 열어주지 않던 김남일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도 예의 몸을 사리지 않는 저돌적인 플레이를 선보였으나 발목을 접질리는 상처를 입었다.
김남일의 또 다른 별명은 '반칙왕'이다. 조별예선과 16강전까지의 4경기에서 모두 14개의 파울을 기록, 팀 내에서는 가장 많고 전체 6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남일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압박 축구를 주 무기로 한 한국 축구에 없어서는 안 될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이 월드컵 첫승에 이어 4강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도 김남일이 공격의 물꼬를 트는 상대 플레이메어커와 최전방 공격수까지 꽁꽁 묶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땀과 눈물의 대가로 별 볼 일 없는 선수에서 '버팀목'으로 성장한 김남일을 비롯해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는 중심으로 거듭났다. 12년인 지난 2014년 현재, 몇 남지 않은 현역 선수인 김남일과 브라질 월드컵을 이끄는 홍명보 감독, 안정환-이영표-송종국 해설위원,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 등 K리그의 중심에 서거나 세계 무대로 뻗어 나가며 한국 축구를 한 발 더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