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포토스토리] 추억의 2002 붉은악마 편, '나 다시 돌아갈래!'

기사입력 2014-06-12 06:39



붉은악마 서포터스들만 길바닥에 앉아서 보는 거로 생각했다. 축구 중계는 집에서 식구들, 혹은 친구들끼리 편하게 보는 게 최고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폴란드를 이기기 전까지 많은 국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2002년 6월 4일 폴란드전이 열리던 날,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길거리 응원은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거리 응원도 세종로 사거리와 대학로 등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그 당시 광장이 아닌 도로였던 서울 시청 앞이 붉은 물결로 뒤덮이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폴란드전 당시 시청앞. 축구중계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일찍 귀가해 차량이 없는 거리를 담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축구 중계가 있는 날 신문사에서 일상적으로 찍었던 스케치 사진이었다.
그런데 한국이 폴란드를 2-0으로 꺾고 월드컵 출전 역사상 첫 승을 거두면서 시민들이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에 동참했다. 6월 10일 미국전을 앞두고 봇물처럼 터진 국민들의 응원 열기를 수용하기 위해 서울 시청 앞 도로가 전면 차단되며 차가 아닌 사람에게 개방됐다. 서울시청 앞이 시민으로 꽉 찬 것은 1987년 6월 10일 6ㆍ10 민주항쟁 이후 꼭 15년 만의 일이었다.


10일 처음 시작된 시청 앞 응원의 열기는 뜨거웠다. 폭우 속에서도 시민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이날 길거리 응원을 나온 시민의 숫자는 대단했다. 서울시청과 광화문에 30만명을 포함해 서울에서만 45만명, 전국 81곳에서 66만명(경찰 추산)이 길거리에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미국전 길거리 응원은 시작에 불과했다. 14일 포르투갈전에는 서울시청 앞 47만명, 광화문 45만명 등 서울 13곳에서 143만명, 전국 223개 곳에서 278만명이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18일 이탈리아전에는 전국 311곳 350만명이 길거리 응원에 동참하며 골든골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태극전사들이 승리를 거듭함에 따라 거리 응원의 규모는 커져만 갔다. 22일 스페인전에서 전국 500만여명을 기록한 데 이어 25일 독일전에서는 무려 650만여명이 거리 응원에 나서는 기록을 세웠다. 서울시청 앞 80만여명, 광화문 55만여명,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 27만 여명, 여의도 35만여명 등 서울에서만 243만여명, 부산 43만여명, 대구 28만여명, 인천 20만여명, 울산 9만여명, 경기 92만여명, 강원 17만여명, 충남,북 63만여명, 전남,북 67만여명, 경남,북 56만여명, 제주 4만여명이 모였다.


2002년 거리응원은 규모도 세계적이었지만 성숙한 시민의식도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주최국이라는 책임의식과 자발적인 응원을 이끌어낸 주인의식이 뜨거운 열정 속에서도 질서를 잊지 않게 했다. 당시 프랑스 르몽드는 '붉은 악마는 새로운 응원문화를 창조해냈다. 한국 사람들은 질서 안에서 열광할 줄 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CNN은 '거대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물샐틈없이 질서정연한 군중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것'이라고 극찬했다.


조금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갑자기 월드컵 응원의 성지가 된 서울시청 앞 광장 맞은편 프라자 호텔에서 한국전이 열리는 날에 결혼식 날짜를 잡은 사람들이 하객 동원에 초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호텔 측에서는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팀을 응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애써 위로했다는 후문이다.



'붉은 악마' 서포터스의 이름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한 종교단체에서 '악마라는 명칭이 국가적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며 응원단의 이름을 '붉은 호랑이'로 바꿀 것을 제안한 것. 물론 그들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환호하고 감격했던 붉은악마들은 경기장에서는 오래도록 기억될 카드섹션을 선보였다. 16강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AGAIN 1966', 8강 스페인전의 'Pride of ASIA', 4강 독일전의 '꿈은★이루어진다', 터키와의 3~4위전에 보여준 'CU@K리그'. 이겼을 땐 미치도록 열광했고, 비록 졌어도 질서를 지키며 격려와 응원을 멈추지 않았던 성숙한 시민의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명 문구들이었다. '꿈은 이루어 진다'고 말했던 그 건강한 청춘들은 지금 어느 곳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을까?
정재근기자 cjg@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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