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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해 '추한' 축구도 마다하지 않겠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지도자로 말을 갈아탄 뒤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선수시절 뛰었던 포르튀나 시타르트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1999년 팀을 KNVB컵(네덜란드 FA컵) 결승으로 이끌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0년 페예노르트의 지휘봉을 잡은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2001~2002시즌 UEFA컵 우승컵을 이끌며 단숨에 명장 반열에 올랐다. 2004년 도르트문트로 옮기기 전까지 매시즌 페예노르트를 3위 이내로 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도르트문트에서도 강등권에 있는 팀을 중위권으로 올려놓았다. 2007년에는 다시 페예노르트로 돌아와 2008년 KNVB컵을 차지했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실리를 추구하는만큼 단기전에 강하다. 특히 토너먼트만큼은 네덜란드 축구계에서도 최고로 통한다. KNVB컵이나 UEFA컵과 같은 토너먼트에서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우승 경력이 많지 않았음에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월드컵 무대에서도 자신의 토너먼트 DNA를 과시했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단기전에 강한 이유는 수비 조직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남아공월드컵 때로 돌아가 보자. 4-2-3-1과 4-3-3을 병행한 네덜란드는 수비력이 좋은 나이젤 데용, 마르크 판 봄멜을 더블볼란치(두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용했다. 베슬러이 스네이더를 비롯해 공격자원들의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강조했다. 한, 두명의 선수를 제외하고 전원이 수비에 가담하는 '질식축구'에 '네덜란드의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는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수비축구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페예노르트가 UEFA컵을 거머쥐었을때나 네덜란드 대표팀 당시 몇몇 평가전에서는 공격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스타일을 정하기 보다는 승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스타일이다.
실리를 강조하는 그 답게 명성보다는 실력을 강조한다. 때문인지 아시아 선수와도 인연이 많다. 페예노르트 시절 송종국과 이천수를 영입했다. 오노 역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제자였다. 송종국의 경우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도르트문트로 옮기며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졌을 정도로 판 마르바이크와의 궁합이 좋았다. 송종국은 인터뷰에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을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추천하기도 했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이천수에게도 많은 기회를 줬다. 아시아 선수들에게 우호적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카리스마형으로 알려졌지만, 선수단 장악 능력이 떨어진다. 남아공월드컵 이후 팀의 규율을 잡던 프랑크 드보어 수석코치가 아약스로 옮긴 후 스타선수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사위이기도 한 판 봄멜을 지나치게 중용하며 선수들의 반기를 산 판 마르바이크는 유로2012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고집이 세 선수들과의 불화도 잦았다. 페예노르트 시절에는 당시 최고의 유망주였던 로빈 판 페르시와 불화 끝에 그를 아스널로 보냈고, 로번이 전술을 명령하는 판 마르바이크 감독에게 "닥쳐"라고 소리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한 변화를 꾀하지만 전체적인 전술은 비교적 단조롭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