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선수단이 8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제주와의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5라운드에서 전반 27분 레오나르도의 선제골이 터진 뒤 환호하고 있다. 서귀포=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K-리그가 떨고 있다.
투자 위축의 칼바람이 매섭다. 내실이라는 명목 하에 지갑이 닫힌 지 오래다. 갈 곳을 잃은 선수들은 중동 뿐만 아니라 '한 수 아래' 정도로 여겼던 동남아 시장까지 거리낌 없이 노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향평준화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에 K-리그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K-리그 팀들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진출 행진이 올해 끊기면서 '위기'를 논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전북이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을 정복했다. 단순한 우승이 아니다.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지를 똑똑히 보여줬다. '절대1강'이란 타이틀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치밀한 준비로 투자와 성과, 재투자라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전북의 운명이 바뀐 것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를 밟은 전북은 모기업 현대자동차 로고가 찍힌 녹색 유니폼을 입고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등을 누빌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ACL 우승팀 자격으로 선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단이 단순한 사회공헌, 홍보가 아닌 수익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한국 프로축구에 처음으로 알렸다. 글로벌 스포츠인 축구는 전세계로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소통의 창구였다.
전북은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현대차는 월드컵 공식 파트너 등 공격적인 스포츠마케팅의 대표적 기업이다. 전북은 2007년부터 전 사원이 매달려 모기업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 답은 '홍보 첨병'이었다. 현대차 본사가 위치한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기나긴 설득의 여정이 시작됐다. 전북이 2009년 처음으로 K-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심드렁 하던 현대차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이 단장과 최강희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클럽하우스 건립을 승인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전북 클럽하우스 내 수중 치료기
전북은 멈추지 않았다. '현대차'의 얼굴을 자처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2011년부터 4년간 현대차의 신흥 마켓인 브라질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했다. 2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은 문제가 아니었다. 받은 만큼 성과를 내야 했다. 난색을 표하던 최강희 감독과 선수들도 구단의 정책을 이해한 뒤부터 더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다. 시즌 중에도 장거리 원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올림피크 리옹과의 친선전을 위해 프랑스 현지로 날아가 유럽에 현대차를 알렸다. 최근에는 베이징 궈안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중국 시장까지 발을 넓혔다. 신흥시장에서 현대차의 점유율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데 전북이 일정부분 공헌한다는 결과물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성과는 곧 재투자로 이어졌다. 단순히 돈을 쥐어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전북 봉동의 낡은 현대차 사원 아파트에 세들어 살던 전북 선수단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클럽하우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소음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던 숙소에서 버스로 논밭을 가로질러 황랑한 연습장으로 향하던 시대와 작별을 고했다. 이제는 훈련과 휴식 뿐만 아니라 유럽 명문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중치료기까지 갖춘 구단이 됐다. 급격히 위축된 K-리그 시장에서도 '큰 손'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이승기, 김기희, 정인환, 정 혁, 올해는 한교원, 김남일, 이승렬, 이상협, 신형민 등 '국가대표급' 자원들을 싹쓸이 했다. 최상의 전력을 다지자 수많은 파고에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최강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기업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현대차의 투자의지가 영원할 수는 없다. 전북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전북은 5년 뒤 구단 운영 자금의 50%를 직접 조달하고 10년 뒤엔 완벽히 자생하는 구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꾸준히 유스 시스템 강화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재성, 이주용, 권경원, 김 신(현 리옹) 등 주전급 유스 출신들을 키워냈다.
신뢰의 끈은 단단하다. 정 부회장은 제주전에서 전북이 조기 우승을 확정하자 이철근 전북 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국 축구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북이 압도적으로 K-리그 클래식을 제패한 데 축하를 보낸다. 곧 만나자"며 변치않는 '축구사랑'을 과시했다. 이 단장에게 전화를 건네받은 최 감독은 "모기업에서 선물해 준 클럽하우스 덕택에 고비였던 여름을 잘 넘길 수 있었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전북이 걸어온 길은 K-리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위기 만을 외치는 K-리그 구단들을 향한 채찍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