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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반전에 이은 급반전이었다.
최 감독도 이들과의 경쟁을 꿈꿨다. K리그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서울 구단의 최고위층의 재가가 떨어지면서 장쑤행은 급물살을 탔다. 장쑤 구단 측에 수락 의사를 밝혔다. 서울 구단도 이별을 준비했다. 사인만 남았다.
감독은 신이 아니다. 선수와 리그를 파악하는 데 최소 1년은 걸린다. 올해 하반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선 합류 시기에 줄다리기가 있었다. 장쑤는 계약 직후 팀 합류를 바랐다. 11일 산둥 루넝과의 홈경기부터 팀을 직접 지휘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서울은 최 감독이 11일 포항전까지 팀을 이끌어줄 것을 요청했다. 또 최 감독은 2014~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P 라이선스 코스를 이수 중이다. 7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독일에서 열리는 교육 캠프에 참가해야 한다. 팀을 비워야 한다. 이 기간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으로 리그 일정은 잡혀 있지 않지만 공백은 불가피하다.
중국 축구의 한계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중국 축구에 한 획을 그은 이장수 감독이 거울이다. 2009년 9월 베이징 궈안을 이끌 때였다. 리그 우승이 목전이었지만 토사구팽을 당했다. 구단 고위층의 과도한 간섭으로 끝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 달여후 베이징은 창단 후 첫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광저우 헝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3월이었다. 이 감독은 2부 리그의 광저우 감독에 선임됐다. 삼고초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계약기간은 4년이었다. 걸어온 길이 역사였다. 그 해 광저우를 2부에서 우승시켜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2011년 1부 리그도 제패했다. 승격팀이 1부 리그 패권을 거머쥔 것은 이례적이다. 2012년 아시아 정상을 꿈꿨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16강에 올랐다. 중국 리그에서도 선두를 질주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외풍에 5월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광저우 헝다는 올해도 6개월 만에 칸나바로 감독을 경질했다. 중국 프로구단들 사이에선 새로울 것이 없는 흔한 소식이다. 감독들에게 향하는 잣대에는 인내가 없을 뿐 아니라 작위적이다. 입맛에 맞지 않은면 언제든지 칼을 꺼낼 수 있는 풍토다.
최 감독은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다시 그의 시계는 서울과 K리그를 위해 돌아가고 있다.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해외 진출의 물꼬는 텄다. 그는 더 큰 꿈을 향해 재전진을 시작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