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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레스터시티는 태업을 한 것이 맞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7-03-15 10:20


레스터시티 ⓒAFPBBNews = News1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태업을 한 것이 맞다.

기적과 같은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행이 물음표를 확신으로 바꿨다. 레스터시티는 15일(이하 한국시각) 영국 레스터시티 킹파워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세비야와의 2016~2017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2대0 완승을 거뒀다. 원정 1차전에서 1대2로 패했던 레스터시티는 1, 2차전 합계 3대2 역전 드라마를 썼다.

이날 2차전은 우리가 지난 시즌 봤던 레스터시티의 모습 그대로였다. 후반기 엄청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강호 세비야를 상대로도 물러섬이 없었다.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선수비 후역습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수비는 단단했다. 웨스 모건을 중심으로 한 포백은 조직적이었고, 대니 드링크워터가 이끈 중원은 헌신적이었다. 공격은 날카로웠다. 리야드 마레즈의 돌파는 탁월했고, 제이미 바디는 빨랐다.

무엇보다 열성적으로 뛰었다. 쉴새 없이 압박하고, 쉴새 없이 역습에 나서며 상대를 무력화 시켰다. 물론 사미르 나스리의 퇴장, 스티브 은존지의 페널티킥 실축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분명 '팀' 레스터시티는 개인기가 월등한 세비야를 압도했다. 지난 시즌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맨유, 첼시, 아스널, 맨시티 등 빅클럽을 넘어 레스터시티가 동화 같은 우승을 차지한 동력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시계를 지난달 23일로 돌려보자. 이 경기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전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다. 레스터시티는 세비야 원정길에서 1대2로 패했다. 캐스퍼 슈마이켈 골키퍼의 선방이 없었다면 더 크게 질 수 있었던 경기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레스터시티의 장점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중원의 핵' 드링크워터 기록을 보면 잘 나타난다. 2차전에 2개의 인터셉트와 8개의 클리어런스(수비가 혼전 중 걷어낸 볼)을 기록한 드링크워터는 1차전에서 1개의 인터셉트와 4번의 클리어런스를 기록하는게 그쳤다. 정확히 2배다. 팀 전체를 봐도 그렇다. 2차전에서 무려 40개의 클리어런스를 기록한 레스터시티의 1차전 기록은 12개에 불과했다. 개인기량에서 뒤지는 레스터시티 선수들이 활동량과 열정을 잃은 결과는 당연히 패배일 수 밖에 없다.

라니에리 감독이 물러선 후 레스터시티는 후폭풍을 겪었다. 기적 같은 우승을 일궈낸 후 9개월만에 내린 경질 통보에 팬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보냈다. 레전드들도 레스터시티의 결정에 '배은망덕한 결정'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라니에리 감독이 누구인가. 무명의 선수들을 이끌고 동화를 완성시킨 바로 그 감독이다. 전 세계가 라니에리의 지도력에 경의를 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올해의 감독상도 그의 몫이었다. 돈이 지배하는 축구계에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레스터시티는 올 시즌 거짓말처럼 추락을 거듭했고, 레스터시티의 결정은 단호했다. '축구에 더이상 낭만은 없다'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다. 특히 드링크워터, 바디, 모건은 라니에리 감독을 몰아낸 주범으로 지목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레스터시티는 놀랍게도 이 후유증 속 반전에 성공했다. 리버풀과 헐시티를 잡은데 이어 세비야마저 꺾었다. 라니에리 경질 후 3연승. 드링크워터는 다시 대표급 기량을 찾았고, 바디도 펄펄 날고 있다. 하지만 감독 교체의 효과로만 설명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지금 레스터시티는 라니에리가 하던 축구와 다를 바가 없다. 4-4-2 포메이션은 물론 선수비 후역습 전략까지 똑같다. 같은 자원, 같은 전술, 그러나 달라진 결과. 이것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차전에서 보여준 투혼이 라니에리의 마지막이었던 1차전과 너무나 대비됐기에, 그래서 더욱 환신이 생겼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태업을 한 것이 맞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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