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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태업을 한 것이 맞다.
무엇보다 열성적으로 뛰었다. 쉴새 없이 압박하고, 쉴새 없이 역습에 나서며 상대를 무력화 시켰다. 물론 사미르 나스리의 퇴장, 스티브 은존지의 페널티킥 실축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분명 '팀' 레스터시티는 개인기가 월등한 세비야를 압도했다. 지난 시즌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맨유, 첼시, 아스널, 맨시티 등 빅클럽을 넘어 레스터시티가 동화 같은 우승을 차지한 동력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시계를 지난달 23일로 돌려보자. 이 경기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전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다. 레스터시티는 세비야 원정길에서 1대2로 패했다. 캐스퍼 슈마이켈 골키퍼의 선방이 없었다면 더 크게 질 수 있었던 경기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레스터시티의 장점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중원의 핵' 드링크워터 기록을 보면 잘 나타난다. 2차전에 2개의 인터셉트와 8개의 클리어런스(수비가 혼전 중 걷어낸 볼)을 기록한 드링크워터는 1차전에서 1개의 인터셉트와 4번의 클리어런스를 기록하는게 그쳤다. 정확히 2배다. 팀 전체를 봐도 그렇다. 2차전에서 무려 40개의 클리어런스를 기록한 레스터시티의 1차전 기록은 12개에 불과했다. 개인기량에서 뒤지는 레스터시티 선수들이 활동량과 열정을 잃은 결과는 당연히 패배일 수 밖에 없다.
레스터시티는 놀랍게도 이 후유증 속 반전에 성공했다. 리버풀과 헐시티를 잡은데 이어 세비야마저 꺾었다. 라니에리 경질 후 3연승. 드링크워터는 다시 대표급 기량을 찾았고, 바디도 펄펄 날고 있다. 하지만 감독 교체의 효과로만 설명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지금 레스터시티는 라니에리가 하던 축구와 다를 바가 없다. 4-4-2 포메이션은 물론 선수비 후역습 전략까지 똑같다. 같은 자원, 같은 전술, 그러나 달라진 결과. 이것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차전에서 보여준 투혼이 라니에리의 마지막이었던 1차전과 너무나 대비됐기에, 그래서 더욱 환신이 생겼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은 태업을 한 것이 맞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