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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얼마 전 딸이랑 서점에 갔어요. 2020년 다이어리를 봤는데, 되게 두껍더라고요. 그 안에 '무슨 얘기를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괜히 설레더라고요. 희망찬 이야기를 담아봐야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즌을 마친 유 감독은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만의 휴식이 익숙하지 않은 눈치였다. 12월 30일 자택이 있는 경기도 용인 수지에서 만난 유 감독은 "맨날 밖에 있던 사람이 집에 있으려니 힘들다. 아내가 세끼를 다 차려줘야 하니 더 힘들거다"고 웃었다. 역시 예상대로 치료 과정은 쉽지 않았다. 3차 항암 치료 때는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유 감독은 "1, 2차는 그럭저럭 받을 만했다. 3차 때는 너무 힘들더라. 밥도 잘 안넘어갔다. 환자복과 침대만 보면 울렁거렸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예후가 좋다. 유 감독은 "의사가 놀라더라. 확실히 체력이 좋으니까 남들보다는 잘 버티고 있다. 이제부터라는데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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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감독의 투병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축구인과 팬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중 기억 나는 이는 여름이적시장에 직접 유 감독이 영입한 김호남이었다. 유 감독은 "시즌을 마치고 정리하러 사무실에 갔는데 편지 한 통이 있더라. 팬레터인줄 알았는데 김호남이 썼다. 다섯장이나 됐는데 꾹꾹 눌러쓴 그 정성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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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쉽지 않다. 갑자기 몸상태가 확 나빠질때면,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은 '축구'다. 현역 시절 최고의 순간을 누렸던 유 감독은 아직 지도자 변신 후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기세를 올릴 때마다 변수를 만났다. 대전을 잔류시킨 후 다음 시즌을 계획했지만 계약 만료로 지휘봉을 내려놨고, 인천에서는 췌장암에 발목이 잡혔다. 유 감독은 "솔직히 아직 내가 하고 싶은 축구를 못했다. 대전과 인천에서 모두 상황때문에 결과를 내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올 시즌을 마친 후 어떻게 하면 다음 시즌에 더 잘할 수 있을지 그림이 딱 그려졌다. 자신도 있다. 꼭 돌아와서 나만의 축구로 인천팬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유 감독은 투병 중에도 축구를 놓지 않고 있다. 전술을 공부하고,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고 있다.
2020년, '감독 유상철'에게는 가장 중요한 해다. 코뼈가 부러져도 헤더로 골을 만들어내던 '투지의 상징' 유 감독은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났다. 그럴수록 유 감독의 마음은 더욱 강해진다. 유 감독은 "나의 2020년 다이어리는 희망으로 채우고 싶다. 1월 2일 시작되는 4차 항암 치료부터는 강도가 더 세진다고 한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부딪히고, 이겨내겠다. 그래야 강인이랑 대표팀에서 만나볼 수도 있고, 계속 내가 좋아하는 축구와 함께 할 수 있지 않나"라며 웃었다. 투지의 아이콘에서 희망의 아이콘이 되려는 유 감독의 2020년을 응원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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