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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무리뉴는 지금 SON을 호날두처럼 쓰고 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20-10-06 09:21


로이터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그야말로 신들린 득점 레이스다.

'손샤인' 손흥민(토트넘)이 연일 펄펄 날고 있다. 손흥민은 5일(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20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에서 2골-1도움을 기록했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단 일주일만에 깜짝 복귀한 손흥민은 또 다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6골로 도미닉 칼버트-르윈(에버턴)과 함께 득점 선두를 질주했다. 개막 후 6경기에서 7골을 폭발시키며, 국내는 물론 영국을 놀라게 하고 있다.

손흥민은 매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득점력을 인정받고 있다. 측면 공격수의 결정력을 강조하는 현대축구에서도 손흥민의 득점력은 단연 발군이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 처럼 폭발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이제 28세로 기량이 만개할 나이인데다, A매치 없이 조용한 프리시즌을 보낸만큼 '역대급 시즌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 정도일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손흥민의 활약은 압도적이다.

과연 무엇이 손흥민을 바꿔놓았을까. 전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단 손흥민의 포지션은 지난 시즌과 차이가 없다. 손흥민은 4-3-3과 4-2-3-1을 병행하는 조제 무리뉴 감독식 전술에서 왼쪽 날개를 맡는다. 손흥민이 가장 익숙해 하는 자리다. 해리 케인의 부재시 원톱 자리도 뛰지만, 손흥민은 왼쪽을 기반으로 다양한 위치를 오가며 플레이 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왼쪽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때리는 슈팅은 손흥민의 전매특허다. 손흥민은 이러한 움직임으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시절부터 많은 골을 넣었다.


지난 1월26일 사우스햄턴과의 FA컵 손흥민의 히트맵. 사진캡처=후스코어드닷컴
무리뉴 감독은 지난 시즌 부임 후 손흥민의 위치를 한단계 내렸다. 수비 불안과 빌드업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비대칭 전형을 쓰며, 다재다능한 손흥민을 하프윙 형태로 활용했다. 수비시에는 거의 윙백처럼 움직였다. 손흥민은 이 자리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득점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볼 운반과 수비에 더 비중을 두는 대신, 좌우 스위칭과 후방 침투를 제한한 결과였다. 물론 공격적으로 나선 경기에서는 위력을 발휘했다. EPL 올 시즌의 골로 기록된 '마라도나 빙의골'을 터뜨린 번리전과 부상에도 불구하고 2골을 폭발시킨 애스턴빌라전이 대표적이었다. 손흥민은 제한된 환경 속, 퇴장과 부상의 어려움까지 겹쳤지만 11골을 넣으며 선전했다.

새로운 시즌, 무리뉴 감독은 맷 도허티와 에밀 피에르 호이비에르 등을 영입하며 스리백에 가까웠던 비대칭 대신 특유의 스리 미들 전형을 앞세운 포백 카드를 꺼내들었다. 첫 경기 뉴캐슬전만 하더라도 손흥민의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지난 시즌보다 더 공격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극적인 변화의 시작은 사우스햄턴과의 EPL 2라운드였다. 무리뉴 감독은 평소처럼 손흥민을 왼쪽 날개로 기용했지만, 눈여겨 볼 것은 위치였다. 케인 보다도 위쪽에 두며, 포워드의 역할을 맡겼다. 상대의 라인에서 움직이며 뒷공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기서 하나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케인의 활용법이었다. 사실상 제로톱이었다. 케인은 센터포워드로 나섰지만 공격 전개시 미드필더처럼 내려와 상대 수비를 유인한 뒤 전방으로 볼을 뿌렸다. 이 전술은 완벽히 통했다. 손흥민은 커리어 최다인 4골을 몰아쳤고, 케인은 이 골을 모두 도왔다. 한 선수가 다른 한 선수만의 도움을 받아 4골을 넣은 것은 EPL 역사상 처음이었다. 사실 사우스햄턴전에서 토트넘의 경기력은 썩 좋지 않았지만, 무리뉴 감독은 이날 경기를 통해 그간 지적된 공격력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


무리뉴 감독은 10번 유형의 알리를 배제하고 케인의 제로톱, 손흥민의 포처를 극대화한 전술로 탈바꿈했다. 손흥민이 부상에서 돌아온 맨유전이 바로미터였다. 토트넘의 전형은 4-3-3이었지만, 손흥민과 케인은 투톱에 가까운 움직임을 펼쳤다. 손흥민이 위쪽에서 공간을 파고들었고, 케인이 이 움직임에 맞춰 공을 내줬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수비시 위치였다. 수비시 아래 지역까지 내려갔던 과거와 달리, 손흥민은 위쪽에서 역습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이 볼을 탈취하면 곧바로 상대 문전을 향해 뛰었고, 이 볼은 어김없이 손흥민을 향했다. 손흥민은 딱부러지는 마무리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왼쪽은 뉴캐슬전, 오른쪽은 사우스햄턴전 토트넘의 패스맵. 사진캡처=비트윈더포스츠
이같은 전술은 무리뉴 감독의 화려한 커리어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2011~2012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연상케 한다. 당시 무리뉴 감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극대화한 전술로 레알 마드리드에 최초의 승점 100점 우승을 안겼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에 대응하기 위해 역습 속도를 올리는데 주력했던 무리뉴 감독은 폭발적 스피드와 득점력을 자랑하는 '왼쪽 날개' 호날두를 포처에 가깝게 썼다. 호날두는 이 시즌 무려 46골을 폭발시켰다. 호날두의 파트너였던 센터포워드 카림 벤제마는 첫 시즌의 부진에서 탈피, 호날두와 환상의 콤비를 보이며 '연계형 공격수'로 거듭났다. 물론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지금 토트넘에는 없는 메주트 외질이라는 확실한 '10번'이 있었지만, 역습 상황의 속도를 살리는건 호날두-벤제마 듀오였다. 손흥민-케인 콤비는 여러모로 호날두-벤제마 듀오와 닮았다.

무리뉴 감독은 지금 손흥민을 호날두처럼 쓰고 있다. 포르투 시절부터 특급 날개들과 함께 했던 무리뉴 감독이지만, 호날두만큼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없었다. 맨유 시절, 속도를 올려줄 수준급 측면 공격수를 찾아 해맸던 무리뉴 입장에서 호날두와 같은 7번을 달고, 빠른 스피드에 폭발적인 슈팅력, 양발 사용에 능한 손흥민의 존재는 분명 반가웠을거다. 무리뉴 감독은 과학이라던 2년차, 자신의 축구를 완성시켜줄 적임자로 손흥민을 찍었다.

물론 토트넘으로 복귀한 가레스 베일이 부상에서 돌아올 경우, 전술에 변화가 생길수도 있다. 전성기 기량만 놓고본다면 베일은 손흥민 이상의 선수다. 하지만 베일은 이제 돌격대장 역할을 하기에는 예전의 몸상태가 아니다. 좋았을때도 베일은 볼을 잡았을때 더 위력적인 선수였다. 오히려 지금처럼 배후를 활용해 속도를 극대화한 축구를 펼친다면, 손흥민이 더 좋은 카드일 수 있다. 지금 손흥민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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