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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을 기억해야할 사람..." 울산,이쯤해서 다시 김보경의 MVP소감을 권한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10-21 12:34



"감독님께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2등을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2등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죠. 울산 현대 선수들, 스태프. 팬분들."

지난해 12월 2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플레이메이커 김보경의 '명품' 수상소감이다. 전날 시즌 최종전에서 포항에 패하며, 전북 현대에 '다득점 1골 차' 역전우승을 내준 직후다. 준우승팀에서 드물게 MVP의 영예를 차지한 김보경이 미안함과 고마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 미묘한 지점에서 동료들과 구단을 향해 건넨 이 메시지는 역대 최고의 MVP 수상소감으로 회자됐다.

세상 모든 이들이 2등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울산만큼은 2등의 아픔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 반드시 더 강해져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팬 분들은 저희가 올해 정말 잘했다고 해주셨지만 이 한 경기로 모든 걸 실패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올해 실패가 아니라… 올해 거둔 2등을 실패로만 생각한다면 정말 실패이고, 올해 얻은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모든 것을 바탕으로 내년을 준비한다면 팬분들도 더 응원해주실 것이고, K리그도 더 재미있어질 것이고, 울산 현대도 더 강해진다고 믿고 싶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KBK' 김보경은 이 멋진 수상소감을 남기고, 새 시즌 '디펜딩 챔프' 전북 현대로 표표히 떠났다. 그리고 오는 25일 오후 4시30분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질 K리그1 26라운드 울산-전북의 맞대결, 사실상의 우승 결정전에서 김보경은 '적군' 전북의 에이스로 울산의 '15년만의 우승' 저지 임무를 명 받았다. 김보경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직전 25라운드 광주전에서 펄펄 날았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격라인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후반 20분 골맛도 봤다. '유관중 요정'이라는 별명과 함께 4대1 대승을 이끌었다.

반면 11라운드 대구전(3대1승) 이후 선두를 질주해온 울산은 외려 파이널라운드에서 흔들리고 있다. '마지막 동해안더비' 포항전에서 0대4로 완패했다. 올시즌 25경기에서 22실점만을 기록한 울산의 단일경기 최다실점이다. 이로 인해 전북에 최소 실점(21실점) 기록도 내줬다. 맞대결 포함 2경기를 남기고, 2위 전북과의 승점은 54점으로 똑같아졌고, 다득점 8골 차로 초박빙의 선두를 유지했다. 불투이스, 비욘 존슨 등 공수의 핵 2명이 한꺼번에 레드카드를 받아든 탓이다. 평정심을 잃었다. 윤빛가람과 주니오의 발끝이 맞아들던 순간에 닥친 퇴장 악재라 더욱 아쉬웠다. 전술, 경기력 다 떠나서, 중요한 승부처에서 평소 안하던 성급하고 경솔한 플레이로 스스로 무너졌다.

올 시즌 내내 울산 선수들은 '지고 있어도 질 것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었다.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자신들의 템포로 경기를 밀고 당기며 동점골, 역전골을 넣었다. 그렇게 한 시즌을 잘 지켜왔다. 질 것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동료와 팀을 믿고, 우승 자격을 이미 가졌는데, 왜 허둥지둥 서두는가. '올 시즌 잘해온 대로, 잘하는 걸 계속 이어가면 되는데…' 우승에 목마른 울산 팬들은 그래서 더 속이 탄다. 결국은 팬들이 경기장 걸개를 통해 뼈아프게 지적한 '왕관의 무게'를 견딜 자격, '위닝멘탈리티'의 문제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MVP 김보경의 바람대로 울산은 올 시즌 더욱 강해졌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구단의 폭풍영입에 김도훈호는 뒤로 빼지 않는, 화끈한 공격축구로 화답했다. 김 감독은 '파이널 서드에서의 투쟁심 넘치는 공격'을 주문하고 또 주문했다. 그 결과 25경기 중 10경기에서 3골 이상의 화력쇼를 펼쳤고, 무려 51골을 몰아쳤다. 동해안더비에서도 4번 중 3번을 이겼고, 전북전 2패를 포함해 패배는 단 3번뿐이다. '골무원' 주니오는 25골을 몰아치며 득점 선두를 질주하고 있고, 이청용, 조현우 , 홍 철, 김태환, 정승현, 이동경 등 핵심 전력 전원이 벤투호의 부름을 받으며 '국대 군단''대세군단'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그런 울산의 파이널라운드 3경기, 1승1무1패의 성적표는 우승후보답지 않다. 김도훈 감독은 "진 경기는 모두 내 탓, 이기는 경기는 모두 우리 선수들 덕분"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용빼는 전술이 나온들, 그라운드에서 이를 구현해 내는 '위닝 멘탈리티'는 선수의 몫이다. 우왕좌왕, 흔들릴 시간이 아니다. '화룡점정'의 시간이다.

올 시즌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전북을 상대로 울산이 어떻게 싸워야할 지 답은 나와 있다. 한번도 이기지 못한 울산과 전북을 상대로, '얄미운 이웃' 포항 선수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싸웠는지 보면 된다. 지난달 15일 전주성 원정에서 전북에 1대2로 패한 후 울산 김도훈 감독은 "자신감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다. 내가 자신감을 불어넣지 못해 졌다. 전북을 이기고 우승해야 진정한 우승"이라고 말했다. 정답이다. 전북을 넘지 못할 경우 '진정한 우승'도 아닐 뿐더러, 다 잡은 우승의 꿈은 또다시 멀어진다. 울산이 '2등의 기억'을 다시 한번 직시해야 할 이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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