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잉글랜드를 제압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정치적 행동이 논란에 휩싸였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잡고 2연패에 성큼 다가섰다. 아르헨티나는 16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4강전에서 메시의 멀티 도움을 앞세워 2대1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말그대로 기적 같은 역전승이었다. 메시의 발끝이 또 다시 번쩍였다. 0-1로 끌려가던 아르헨티나는 후반 40분 엔소 페르난데스의 동점골에 이어 추가시간 라우타로 마르티네스가 역전골을 터뜨리며 드라마를 썼다. 모두 메시의 도움이었다. 메시는 이날 도움을 추가하며 이번 월드컵 7경기 모두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7경기 연속 공격포인트(8골 4도움)를 작성한 것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대회 토너먼트에서 치른 4경기 모두를 연장승이나 역전승으로 장식하는 저력을 발휘했다.아르헨티나는 이날 승리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 프랑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는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월드컵 2연패는 1934, 1938년 이탈리아, 1958, 1962년 브라질까지 단 2번만 허락된 진기록이다. 아르헨티나는 통산 4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이날 경기는 경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두 팀의 악연 때문이었다. 악연의 시작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었다. '축구 종가'는 자국에서 열린 첫 월드컵, 오직 우승만을 위해 나아갔다. 아르헨티나와 8강에서 충돌했다. 팽팽하던 경기는 아르헨티나 주장 안토니오 라틴의 퇴장으로 급격하게 무너졌다. 최근 별세한 라틴은 퇴장 선언 후 '10분의 항의'라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옐로카드와 레드카드 도입의 계기였다. 아르헨티나를 1대0로 꺾은 잉글랜드는 이후 사상 첫 우승까지 질주했다.
두 팀은 1986년 멕시코 대회, 다시 8강에서 마주했다. 이번에는 아르헨티나가 웃었다. 축구 역사에 남을 장면까지 연출했다.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문전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신의 손'으로 득점을 터트렸다. 마라도나는 불과 4분 뒤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을 넣었다. 골키퍼까지 포함, 선수 6명을 제치고 골망을 흔들어 승리를 확정했다. 판정, 전쟁, 승부욕으로 엮인 두 팀의 라이벌 관계가 스포츠를 넘어 역사에 남는 순간이었다.
악연은 질겼다. 1998년 프랑스에서도 계속됐다. 16강에서 격돌한 두 팀, 화제의 중심에 데이비드 베컴이 섰다.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였던 베컴은 디에고 시메오네의 도발에 화를 참지 못했다. 흥분한 베컴의 보복 행위 이후 시메오네가 쓰러지며 주심은 곧바로 퇴장을 선언했다. 잉글랜드는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고, 베컴은 자국 팬들에게 살해 협박까지 받으며 힘든 시기를 겪었다. 마지막 충돌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F조에 묶였던 두 팀, 잉글랜드가 4년 전 아픔을 설욕했다. 베컴은 페널티킥 득점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렸다. 잉글랜드전 패배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양국의 악연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이어졌다. 1982년 대서양 남단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영국이 승리했다. 이 전쟁으로 아르헨티나군 649명과 영국군 255명이 전사했다. 전쟁의 상흔은 그라운드까지 이어졌고, 양국의 경기는 축구가 아닌 전쟁으로 묘사됐다. 실제 이날도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기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되자,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격하게 기쁨을 표했다.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와 조바니 로셀소는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Las Malvinas son Argentinas)'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팬들을 향해 펄쩍펄쩍 뛰었다. 당초 현수막의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르티네스가 인터뷰를 통해 직접 준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티네스는 "그 걸개는 우리를 특징짓는 가장 아르헨티나인다운 모습을 생각해 준비한 것"이라며 "우리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려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는 것이다. 하나로 뭉치고, 이 유니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절대 국민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해당 현수막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FIFA는 정치적, 모욕적, 인종차별적 내용을 담은 현수막, 깃발, 전단, 의류 등의 경기장 반입을 금지한다. 한국도 비슷한 사례를 겪은 적이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2대0으로 꺾은 뒤, 미드필더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세리머니를 해 FIFA로부터 A매치 2경기 출장 정지와 3500스위스프랑(당시 약 410만원) 벌금 징계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과거에도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정치적 현수막을 들어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지난 2014년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슬로베니아와의 평가전에서도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친 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FIFA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 2만 파운드(약 402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