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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반란이다.
유선영이 오랜 무명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긍정의 힘' 때문이다.
유선영은 LPGA에서 활약하는 프로들 사이에서 '코스의 개그우먼'이라고 불린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 싹싹한 후배이자 웃긴 동료로 프로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당하다. 한국의 개그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직접 따라하는가 하면 동료들에게 보여주며 함께 여가 시간을 즐기는 등 한국 여자 골퍼들 사이에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역할도 자처한다고 한다. 유선영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물에 들어간 적을 없지만 한 번 빠져보고 싶었다. 4라운드 전 캐디와 18번홀 다리에 우승자 자격으로 이름을 새기자고 농담삼아 얘기했는데 현실이 됐다"고 밝혀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배려심도 뛰어나다. 지난주 친한 선배인 한희원(34)의 집에 머물며 KIA클래식에 출전했는데 준우승의 성적을 거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유선영은 나비스코 챔피언십 기간동안 17번홀 근처에 집을 빌려 한희원을 초대해 머물게 했다고도 한다.
유머감각, 강심장, 자신감은 어렷을 때부터 돋보였단다. 유선영을 골프에 입문시킨 부친 유대림씨(57·자영업)가 어릴 적 일화를 전해줬다. 그는 "나를 따라 몇번 골프 연습장에 간게 전부인데 몇 번 연습한 후 초등학교 대회에 나가서 95타를 쳤다. 11세였고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하지도 않은 시기였다. 대회를 지켜보던 한 관계자가 '용기있게 잘 친다'는 평가를 내렸고 그 길로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어딜 가나 유머 감각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항상 웃고 다니는 밝은 아이였지만 독종 중에 독종이었다. 몸이 아파 학교에 안보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골프장 가서 연습하고 있다는 것이 유씨의 전언이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학교 입학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회 성적이 없어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서문여중에 입학한 뒤로는 연습에만 매진했다.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였다. 중학교때 중·고등학생 통합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2004년에는 주니어 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실력을 뽐내더니 고등학교 졸업후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에서도 승승장구했다. 2005년 퓨처스투어 첫시즌 상굼 순위 5위에 오르며 LPGA 투어 출전권을 따냈고 2006년부터 본격적인 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2006~2007년 신인 시절에는 유명 캐디를 구하기 힘들정도로 무명의 고난을 겪었지만 2009년 LPGA투어 P&G 뷰티 NW아칸소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 사이베이스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첫 우승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유씨는 "크게 시간 낭비한 것 없이 막차라도 타고 제 갈길을 갔다"며 딸의 골프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그를 향하지 않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뛰지 않아 한국 대중들에게 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일까. 유선영은 1승을 올린 뒤 "매치 플레이 대회가 아닌 스토로크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그 뜻을 이뤘다. 유선영은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호수의 여인'으로 거듭나며 LPGA를 이끌 한국 낭자 군단에 당당히 합류했다.
항상 밝은 미소를 보이는 유선영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숨길 수 없었나보다. 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첫 승때도 부모님이 안계셨는데 이번에도 혼자다. 같이 사진찍고 물에 같이 빠지면 좋았을텐데 가족이 함께 있지 않아 아쉽다"라며 밝혔다. 올시즌 목표는 2승이다. "예전에는 코스에서 생각이 많았는데 요즘은 리듬만 생각하려고 한다. 이 페이스를 이어가서 후반기에도 꼭 1승을 추가하고 싶다."
한편, 준우승은 유선영과 연장접전을 펼쳤던 김인경(24·하나금융그룹)이 차지했다. 마지막 18번홀에서 버디 퍼팅으로 연장 합류를 노렸던 '월드 넘버원' 청야니(대만)는 파 세이브에 그치며 8언더파 280타로 단독 3위에 그쳤다. 양희영(23·KB금융그룹)과 서희경(26·하이트)은 7언더파 281타로 공동 4위에,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노렸던 맏언니 박세리(35·KDB산은금융그룹)는 최나연(25·SK텔레콤)과 함께 공동 8위(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에 랭크됐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