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먹계 거물로 군림했던 김태촌씨(64)가 지난 5일 숨졌다. 지난해 3월 심장마비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사망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어깨'들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경찰, 정·재계·연예계·종교계의 폭넓은 인맥이 빈소에 총집합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에게 1,2심 재판 모두 사형을 구형할 정도로 범행은 잔혹했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에 보호감호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9년 폐암 진단을 받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하지만 1992년 '범서방파'를 결성한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 또 수감생활을 했다. 1998년 가수 이모씨와 '옥중결혼'을 했고, 출소한 뒤 교회 집사로 활동하면서 소년원, 경찰서 등을 찾거나 TV에서 설교와 신앙 간증 등 종교활동을 했다.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에는 전국에서 수백명의 조직폭력배들이 조문을 위해 운집했고, 소요에 대비해 경찰병력 150여명이 대치중이다. 8일 발인, 장지인 전남 담양의 한 군립묘지에 안치될 때까지 긴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빈소에는 조용기 목사, 설운도, 권투 챔피언 출신인 염동균씨 등 유명인의 조화가 눈길을 끌고 있다. 평소 고인과 인연이 있던 몇몇 유명인들은 빈소를 직접 찾기도 했다.
한국 주먹계 역사는 대개 4단계로 나뉜다. 일제강점기 김두한, 구마적(고희경), 신마적(엄동욱) 등 낭만파 주먹이 1세대. 광복 이후 사회혼란기에 정치세력과 결탁해 좌우익 힘겨루기와 정권창출의 손발 역할을 했던 김두한, 이화룡,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의 2세대.
전국구 조폭과 회칼같은 무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김태촌의 전성시대는 3세대로 꼽힌다. 1990년대 이후 4세대 폭력조직은 기업화-전문화 됐지만 소규모, 다변화됐다. 최근엔 학교폭력 일진회와 폭력조직의 연관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