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매년 두 번의 시작이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과, 만물이 소생하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살찔 운명을 타고났다는 망언을 하는 것인가? 인류 진화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500만년전 인류 최초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숲에 살면서 주로 채식을 했다. 하지만 250만년전 지구는 점점 건조해졌고 인류는 줄어든 숲을 떠나 무시무시한 적들이 즐비한 초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 후 수백만년간 진화를 거듭하던 인류는 마침내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20만년전의 일이다.
추위와 배고픔에 대비해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적은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우수한 형질은 점점 강화되며 후손에게 전해졌고,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리다.
그리고 30여년전, 슈퍼마켓이 생겼다. 우린 이제 더 이상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헤매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됐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로움이라는 급작스런 변화 속에서 인류는 갈 길을 잃었다. 비만에 관여하는 수많은 우리 몸의 메커니즘은 대개 배고픔에 잘 적응하고, 기아상태에 대비해 에너지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항상 춥고 배고팠기에 풍요로움에 대응하는 방법을 우리 유전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요즈음 유행하는 1일1식, 팔레오다이어트(구석기 다이어트) 등은 우리 인류의 유전적 형질에 적합한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만들어 넣고, 얼마든지 쉽게 소화되는 정제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잔뜩 유혹해 놓고선 이제 와서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라니 한편으로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뿐이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그게 현실이다.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비만과 관련된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습관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살이 찌는 문제가 유전적,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자각하는 움직임들이 늘고 있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체형에 대한 왜곡되고 획일화된 인식에 대한 반성도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줄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냐? 다이어트의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다이어트를 실천하는 것이 나에게 쉽지 않은 일임을 자각하자. 그래서 그 죄책감으로부터 그 패배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남들의 시선 때문에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 스트레스로 폭식하고 후회로 인한 스트레스로 다시금 더 먹게 되는 그런 악순환.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좀 더 나를 존중하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 수십만년 동안 굶주림과 싸워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온 위대하고 위대한 나를…. 글·권병소 엔비유의원 대표원장(대한비만체형학회 학술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