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인구 밀집한 도심 산불 초동대응 실패는 곧 '대참사'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대구 함지산 산불을 계기로 최근 달라진 산불 양상에 맞춰 대응 전략을 전면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산불은 특히 인구가 밀집한 도심 속 야산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 흐름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봄이나 가을의 건조한 시기에, 도심과는 먼 야산에서 주로 발생하던 산불은 이제 일상이 이뤄지는 도심 한 가운데서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교통사고' 같은 뭔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 도심 산불 발생하면 지역 공동체 사실상 '아비규환'
이번 대구 함지산 산불은 관할 북구 전체를 혼돈 속에 빠뜨렸다.
지난 28일 오후 2시께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민가 쪽으로 번져나갔다.
소방당국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북구 주민 수십 만명이 공포에 떨었다.
교통 통제로 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산불 첫날 주민 500여명이 집에 가지 못하고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지난 달 29일 하루 만에 불길이 잡혔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귀가했던 주민들은 그러나 불과 6시간 만에 다시 불길이 살아났다는 소식에 다시 대피소로 되돌아가야 했다.
고령층 주민은 물론 청장년층 주민 가운데는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고, 각급 학교가 임시 휴무 조치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등 혼란상에 경험했다.
70대 한 주민은 "처음에 불길이 잡혔다고 했을 때는 이제 됐다 싶었는데, 다시 불이 번진다는 얘기를 들으니 뭔가 모를 공포감이 밀려들었다"며 "많은 주민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 시도 때도 장소도 안 가려…도심도 '산불 상시 위험권'
이번 대구 산불은 대도시 도심 야산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보통 산불과는 차원이 달랐다.
민가가 적은 농촌지역과는 달리 눈 깜짝할 사이에 다중이 밀집한 공동주택이나 시설이 화마에 휩싸일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함지산 산불 발생 직후 인근 연립주택 근처까지 번진 불은 자칫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대구를 비롯해 서울, 부산 등 우리나라 도시는 대부분 산을 끼고 있어서 언제든지 산불 피해를 볼 수 있다.
빌딩 화재는 기껏해야 옆 건물을 태우는 정도로 그치는 게 대부분이지만 도심 산불은 번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불씨가 바람에 날려 먼 곳까지 날아가기 일쑤여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 늦봄, 여름에도 산불 빈발할 수 있어
대구 함지산 산불은 4월 말에 시작해 결국 5월 들어 진화됐다.
예년의 경우 보통 2월에서 길어야 4월까지를 봄철 산불조심 기간으로 정해 대비해 왔다.
산불의 70% 가까이가 실제로 봄과 가을의 건조한 시기에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5월부터 여름에 이르는 시기는 습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나무들도 물을 그만큼 많이 머금은 상태가 돼 산불 걱정이 적었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늦은 봄부터 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운 날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산불도 때를 가리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습도가 높아져야 할 시기에 고온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해도 연평균 산불이 240건 정도 발생했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약 600건으로 하루 1.5건 넘게 발생할 정도로 급증했다.
그런 가운데 최근 10년간 봄·가을 산불조심기간 이외 시기에 발생한 산불도 전체의 30%에 다다를 만큼 계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산불 피해 면적 또한 급증할 수밖에 없어 1980년대 연평균 1천112ha에서 2020년대 들어 연평균 8천369ha로 크게 늘었다.
◇ 장비·인력이 문제…임차·야간 헬기 확충 '절실'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도심 산불을 예방하거나, 신속하게 제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장비와 인력이다.
산불 예방 활동을 아무리 철저하게 한다 해도 빈틈이 생길 가능성은 상존하는 데다, 일단 불이 발생하면 최대한 신속하게 진압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에 최대한 빨리 다다를 수 있는 장비를 최대한 많이 갖춰야 한다.
현재로서는 산불이 발생한 지역을 관할하는 지자체의 임차 헬기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대구는 임차 헬기가 4대 정도 있으며 전국적으로 지자체들이 약 80대의 임차 헬기를 운용 중이다.
그러나 상당수 지자체가 재정 여건이 열악해 임차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유사시 신속하고 광범위한 진화 작업이 힘든 상황이다.
임차 헬기 구매 또는 임차 비용과 부품 교체·정비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의 '산불 헬기 도입 의무지원법'이 최근 국회에 제출된 만큼 적극적인 시행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와 함께 야간 진화 작업이 가능한 헬기 운용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대구 함지산 산불 현장에서 수리온 헬기가 야간 진화에 나서면서 불길이 민가로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진화 인력도 전문화·고도화 필요…"초동단계부터 전문집단이 지휘해야"
특정 지역에 산불이 발생하면 먼저 해당 지자체가 진압 지휘를 맡는다.
불이 일정 규모 이상 커지면 상급 행정기관이나 산림청 등으로 소관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농촌과 달리 도시 지역은 산불이 빠르게 번져 짧은 시간에 큰 인명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초동 단계부터 산불 전문집단이 진화를 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구 산불 또한 재발화 끝에 사흘 만에 겨우 진화됐지만 자칫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진화 인력의 전문화와 고도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산불 초기에 해당 지자체 소속 진화대원이나 공무원들이 주로 진화에 나서지만 평소 별다른 훈련을 받지 못했거나 나이가 많은 인력이 많아 효과적인 진화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산불 발생 초기부터 전문 훈련을 받는 젊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대부분이 실화…입산 단속 강화, 시민의식 제고 '절실'
대구 함지산 산불은 현재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입산자 실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시작된 지점이 등산로에서 벗어난 농로 인근으로 파악되면서 입산 단속과 함께 주민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월 사상 최악의 경북 산불 이후 전국적으로 등산로 진입을 통제 중이다.
그러나 등산로 입·출구에만 단속 요원 1~2명만 배치해 등산객의 입산을 막을 뿐 오솔길 같은 곳은 사각지대가 많다.
특히 산등성이나 근처 평지에서 밭을 경작하는 주민들을 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이긴 하지만 아직도 농사 부산물을 태우거나 심지어 취사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이제는 강력한 단속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산불 예방 장비의 대대적인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과 백찬석 교수는 "야산 진입로에 폐쇄회로TV뿐 아니라 사물인터넷 기반의 불꽃 감지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드론을 일정 간격으로 띄워 화재 예방은 물론 초동 대처와 주민 대피를 신속하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