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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 DC를 찾는 많은 한국인, 특히 공무원들의 필수 참관 코스 중 하나로 로건 서클 공원 인근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하 공사관) 건물이 꼽힌다.
지난해 9월 미국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이곳은 이재명 대통령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18년 5월 방미 때 찾았던 곳이다.
공사관은 1889년 2월, 조선왕조가 최초로 서양 국가에 설치한 외교공관으로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할 때까지 대미외교의 거점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공사관을 찾을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방문한다면 한미관계를 돌이켜 보고, 대미 외교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가난했던 조선이 당시 2만5천달러, 현재 가치로는 90만 달러(약 12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공사관을 설치한 데는 근대화 모색 과정에서 미국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싶었던 고종(高宗·1852∼1919·재위 1863∼1907)의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이 미국과 거리가 멀어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미국은 "종교(기독교) 지상주의" 국가로서 도덕을 존중할 것이라는 제2대 주미공사 이하영의 글에서 그런 판단 근거를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1905년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각각 인정한 미일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존재는 미국에 대한 당시 조선의 생각이 '순진'했었음을 상기시켰다.
공사관 홈페이지에는 '한미우호의 요람'이라는 수식어가 적혀 있지만, 그와 동시에 '약육강식'의 국제정세 속에 유교적 세계관으로 미국을 바라봤던 조선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장황하게 공사관 이야기를 한 것은 이 대통령이 앞으로 대면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유 민주주의', '철통같은 한미동맹'과 같은 기존 프레임만으로 접근하다가는 과거와 같은 씁쓸함을 곱씹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조선의 기대를 '배신'하며 일본과 손잡았던 신흥 강대국, 6·25전쟁에 참전하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공공재 제공자 역할을 한 초강대국은 한 나라 미국의 '양면'이지만 그런 양면을 관통하는 한 가지 목적은 미국이 판단한 자신들의 '국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역시 국익에 충실하되, 그 국익의 범위를 과거 미국 대통령에 비해 매우 좁게 설정하고, 동맹국을 '미국을 이용하는 나라'로 보는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전략경쟁 상대인 중국과 당장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하려 해도 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 중국의 희토류와 같은 무언가가 한미관계에, 보다 정확히는 한국에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반도체, 조선 등 호혜적 협력이 가능한 영역에서 한미관계의 내실을 더 채우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협력의 아이템들을 많이 발굴하길 기대한다.
그것은 '트럼프의 미국'이 국익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은 피해야겠다고 판단하게 할 것으로 믿어서다.
jhcho@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