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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국 전승절 행사는 김주애 후계설에 쐐기를 박는 듯 보였다. 김정은이 다자외교 첫 무대이자 반서방 공조를 위한 초대형 국제행사에 딸 주애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만 12세 어린 소녀의 세계 외교무대 데뷔전이 주는 대외 메시지를 사실상의 '후계자 신고식' 또는 '세자 책봉식'으로 보는 해석까지 나왔다. 주애는 아버지가 중국 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영접받을 때 바로 뒤에 섰다. 후계자임을 공식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되는 장면이었다. 선대인 김정일과 김정은도 후계자 내정 이후 중국을 방문해 후계 구도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주애로 세습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너무 어려 당 공식 직함을 받고 우상화 작업을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걸림돌이다. 그동안 북한 정세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와 달리 여전히 남성 위주 가부장적 봉건 사고가 지배하는 북에서 여성 지도자의 등장은 어려울 거란 분석도 있다. 조선 왕조의 장자 승계처럼 북에서도 아들 승계 원칙이 깨진 적은 없다. 군부가 어린 여성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못할 거란 회의론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주애는 위장용이고 숨겨둔 아들이 돌연 4대 세습을 완성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3대 세습 때에도 유력 후보는 본처 장남인 정남이었지만, 결국 최종 승자는 꼭꼭 숨겼던 셋째 부인 소생 정은이었다. 한때 정보기관에선 김정은에게 2010년생 장남이 있거나 성별 불상의 셋째가 있다는 첩보를 내놓기도 했다. 김씨 일가 가계도는 구체적이고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자녀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이처럼 김정은이 4대 세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은 대내외 불안한 시선을 불식하려는 초조함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처음 참석한 데다 어린 딸까지 데려간 건 핵보유국 지도자로서 다자 무대에 등장하고 후계 구도에도 이상 없음을 과시함으로써 북의 국제적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필사적 시도일 수 있다. 김정은이 최근 몇 년 새 급진적 변화를 시도 중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김정은은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인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고 '두 국가론'을 분명히 했다. 일본 식민지 해방도 조부 김일성의 항일 투쟁 대신 소련의 전승 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올해 광복 경축 연설에서도 김일성은 언급되지 않았고 러시아의 공만 기렸다. 이런 행보는 북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김일성 지우기'이자 조부와 부친의 유훈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정확한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