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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딸(43)의 성화에 못 이겨 이비인후과 의원을 찾은 70대 박모 씨. 딸은 의사와의 상담에서 "아버지가 언제부터인지 TV나 휴대전화 스피커 소리를 너무 크게 틀고, 가족과 대화할 때도 대화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라며 귀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의견은 딸과 달랐다. 요즘 들어 소리가 조금 덜 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게 박 씨의 생각이었다.
박 씨가 진단받은 난청은 단순한 청력 문제를 넘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는 질환이다. 오는 9월 9일 '귀의 날'을 맞아 여러 가지 난청 질환에 대해 알아본다. 귀의 날은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귀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962년에 제정했다.
◇ 노인 10명 중 3명꼴 '노인성 난청'…"방치하면 치매로 악화"
귀 질환 전문의 단체인 대한이과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약 30% 이상이 난청을 겪고 있다.
노인성 난청은 노화로 고막, 달팽이관 등 청각기관의 기능이 퇴행하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에 일상생활 소음이나 직업 소음과 같은 환경적 요인, 유전적인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노인성 난청의 증상은 박 씨의 경우처럼 본인보다 주변 사람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TV·스마트폰 소리가 커진다", "반복해서 말을 되묻는다",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난청이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난청이 인지기능을 떨어뜨려 노년기 우울증과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한 연구에서는 노년기 난청이 치매 발병 위험을 최대 5배나 높이는 연관성이 관찰됐다. 난청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적절한 소리 자극을 받지 못해 뇌 기능의 저하로 이어져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인성 난청의 악화를 막으려면 보청기를 적극 사용하라고 당부한다.
성균관의대 이비인후과 문일준 교수는 "노인성 난청은 조기에 진단하고, 보청기나 인공와우와 같은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게 인지기능 유지와 치매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프랑스, 미국 등에서 시행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70세 미만 난청 환자가 보청기를 꾸준히 사용한 경우 치매 위험이 약 6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공와우 수술 환자의 약 1/3에서 수술 후 인지 기능이 정상화되고, 치매로 진행되는 비율도 현저히 낮았다는 보고도 있다.
◇ 소음성 난청 산재 10년 새 25배↑…"AI 청력보존프로그램 구축해야"
사업장에서의 지속적인 소음 노출도 난청을 부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성인 난청의 약 16%가 직업성 소음이 원인이다.
직업별로는 제조업 근로자의 약 절반이 84dB(데시빌) 이상의 소음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광업과 건설업에서도 각각 70%, 35%에 이르는 고위험 노출률이 보고됐다. 보통 일상의 대화는 50∼59dB에 해당한다.
이 정도 노출률이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산업재해 수준의 청력 손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의 경우 소음성 난청으로 인한 산재 승인 건수는 지난 10년 동안 25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장해급여 지급액도 수천억 원대로 늘었다.
문제는 이런 난청이 지속되면 작업 중 의사소통의 어려움, 경고음 인지 실패, 기계 이상 소리의 감지 실패 등을 초래함으로써 산업안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고립감, 우울감, 인지기능 저하 등 심리적 문제가 뒤따르는 경우도 많다.
작업 현장에서 청력을 지키려면 정기적인 청력 검사와 함께 청력 보호구를 착용하고 소음 저감 조치 등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예방책이 소극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고, 보호구 착용률 또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울산의대 직업환경의학과 이지호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공지능(AI) 기반의 청력보존프로그램 활성화를 제안했다.
이 교수는 "AI 기반의 실시간 소음 모니터링 시스템, 개인 맞춤형 보호구의 핏테스트 기술, 웨어러블 스마트 보호구, VR/AR을 활용한 청력보호 교육 프로그램 등은 근로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대서도 환자 급증세 '돌발성 난청'…"조기 치료가 최선책"
돌발성 난청은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청력이 떨어지는 질환을 말한다. '삐~' 또는 '웅~'하는 이명이 들리면서 한쪽 귀가 먹먹해지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대표적인 증상으로,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응급질환에 속한다.
이 질환은 순음청력검사를 했을 때 3개 이상의 연속된 주파수에서 30dB 이상의 청력 손실이 3일 이내에 발생했을 때 진단한다. 보통 30~40dB 이상 청력이 떨어지면 일상 대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는다.
돌발성 난청은 30∼50대에 가장 빈번하지만, 최근에는 20대에서 환자 급증세가 가파른 편이다.
원인으로는 바이러스 감염이나 혈관 장애, 자가면역질환, 청신경 종양, 메니에르병 등이 추정되지만 특정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약 90% 이상을 차지한다.
원인불명의 돌발성 난청 치료에는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가 일반적이다. 만약 늦게 발견될 경우 약물로는 회복이 어렵지만, 보청기 등 청각 재활을 통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서울의대 이비인후과 박무균 교수는 "돌발성 난청 환자 중에는 청력을 완전히 잃는 경우도 있다"면서 "손상된 청각 세포가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3일에서 최대 2주까지로, 두 달이 지나면 청각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의심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아 검사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돌발성 난청의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다만 초등학교 입학 전, 중학교 입학 시, 장년기, 노년기에 각각 정기 검사를 받으면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
또한 85dB(버스·지하철 안 소음)보다 큰 소음에 지속해 노출되면 청력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소음을 피하기 어렵다면 귀마개를 사용하거나 조용한 곳에서 자주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아울러 이어폰을 사용할 때는 볼륨을 최대 크기의 절반 이하로 설정하고, 한 번에 60분 이내로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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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