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한라산에 오르는 외국인들

기사입력 2025-10-23 12:45

[촬영 조보희] 2025.10.20
[촬영 조보희] 2025.10.20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휴가를 내고 주중에 제주도 한라산에 다녀왔다. 6년 만에 찾은 제주도 풍광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한라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마주치는 많은 외국인이 너무나 생경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보면 중국인 등 아시아계뿐만 아니라 영어권이나 유럽 국가에서 온 서양인들도 적잖았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느낌상 등산객의 3분이 1 이상이 외국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인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등산화도 신지 않은 채 산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제주도 여행의 하나로 한라산에 온 듯했다. 물론 제대로 된 등산 복장을 갖추고 한라산의 독특한 자연을 수시로 카메라에 담는 외국 등산객들도 있었다. 북한산과 같이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산들을 찾은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반도 남단 한라산을 많은 외국인이 찾는 줄은 미처 몰랐다.

정상 백록담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알프스같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산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어울려 있었다. 일부 외국인은 컵라면을 즐기는 한국인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로 했다. '친절한 한국인'도 있었다. 한참 늦게 하산한 동료는 다리를 삔 듯 걷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중국계 여성에게 등산스틱을 기꺼이 빌려줬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쉽게 산에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의 '도심형 산행'이 외국인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K-등산' 문화가 한국 여행의 주된 영역이 되고 있다. 그에 발맞춰 관련 인프라도 확장하고 있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차례로 북한산, 북악산, 관악산에 등산관광센터를 설립해 운영 중인데 다국어로 등산 안내는 물론 장비를 대여하고 등산 후 샤워실도 제공해 외국인에게 큰 인기라고 한다.

한라산에서 K-등산 확장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달 초 설악산을 다녀온 지인도 곳곳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올해 9월 한 달간 22개 국립공원(경주·한려해상·태안해안·다도해해상·변산반도 포함, 팔공산 제외)의 외국인 탐방객수는 8만1천656명에 달했다. 지난해 9월보다 17.1% 늘었다. 한라산만 보면 올 9월에 1만889명이 탐방했고, 언어권별로 중국어가 2천635명으로 가장 많고, 영어 274명, 일본어 71명, 기타 7천909명이었다.

K-컬처는 과거 팝과 드라마 중심에서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하고, 그 속도도 디지털 기술과 글로벌 플랫폼의 발전에 힘입어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뷰티, 푸드, 패션, 뮤지컬, 웹툰 등에서 이제는 등산까지. 영역 확장의 끝을 짐작하기 어렵다. 한국 문화가 어느덧 세계인의 일상에 내면화돼 글로벌 문화로 향유되고 소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현실을 잘 몰라 상응하는 자부심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 유럽행 비행기에서 젊은 서양 여성이 태블릿PC로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 사이 K-컬처는 더욱 놀랄만한 성장을 거듭했고 그것을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있다. 우린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하고, 그런 마음이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ondo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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