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계 출연연 "전략연구사업은 '제2의 PBS'…정부 통제 우려"

기사입력 2025-10-23 16:51

[촬영 박주영]
공공과기연구노조 설문 결과 90.7% "정보 제공·의견 낼 기회 없어"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단계별로 폐지하기로 했지만 제도 개선이 연구 현장의 의견 반영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과학기술연구노동조합은 23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관료가 일방적으로 주도해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고 출연연은 따라야 하는 잘못된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며 "연구현장에서는 PBS 정책 대안으로 내놓은 전략연구사업이 또 다른 방식의 정부 통제로 이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과기연구노조가 과기계 출연연에 대한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난 14∼20일 노조원 616명(전체 노조원 3천200여명, 응답률 19.25%)을 대상으로 'PBS 폐지 이후 출연연 운영 개편에 대한 구성원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정보 제공 및 의견 수렴 여부'에 대해 절대 다수(90.7%)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답했다.

정부가 소규모 수탁과제를 경쟁적으로 수주하는 PBS 대신 대안으로 내놓은 대형 전략연구사업인 '기관전략개발단'(ISD)에 대한 반응도 회의적이었다.

응답자의 73.2%가 "정부의 요구에 따라 수행하는 전략연구사업 방식이 아니라 출연연 임무에 맞게 자율적으로 기획·수행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과기부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함께 추진 중인 각 출연연의 연구지원 인력을 전산, 구매, 감사 기능을 중심으로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67.2%가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당사자인 연구기관 종사자와 소통하지 않았다', '기관별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통합은 연구지원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것' 등을 들었다.

또 윤석열 정부 당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찬성·주도했던 기관장의 거취에 대해 75.5%가 "당사자가 공개 사과하고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잘못이 있더라도 법이 정한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은 15.6%에 불과했다.

공공과기연구노조는 "PBS 폐지가 단순한 제도 변화를 넘어 출연연을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하는 '연구개발 국가대표'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려면 연구 현장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반영해 출연연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기계 출연연 연구자들의 협의체인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이하 연총)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PBS 폐지의 본질은 연구자 인건비 안정과 연구 자율성 확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전략연구사업 추진 방식이 인건비와 연구비의 실질적인 분리 없이 대형과제 중심으로만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총은 "PBS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중심의 재정과 거버넌스 전환이 필요하다"며 "연구자의 인건비는 정부출연금으로 전액 보장하고 자율연구 비율을 최소 20% 이상 제도화하는 등 국가 임무와 자율연구의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총은 PBS 폐지 이후 후속 정책 방향을 담은 정책자료집을 발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출연연 행정통합과 전략연구사업을 추진하는 취지로 국가 연구개발 체계의 혁신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출연연에 대한 막강한 통제권을 NST에 부여해 몸집과 권한을 부풀리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국가 연구개발 거버넌스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연구개발 현장과의 소통과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되는 각종 제도 개선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jyoun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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