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빈의 플랫폼S] "평화·교류가 우선이었는데"…어쩌다 통일까지

기사입력 2025-11-21 07:10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베를린의 레스토랑 '슈탠디게 페어트레퉁' 내부에 빌리 브란트(가운데) 전 서독 총리 등의 사진이 걸린 모습 . ※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연합뉴스] 지난 17∼18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독통일자문위원회. 양국 대표로 앞 줄 왼쪽에서 네번 째 엘리자베트 카이저 독일 재무부 차관(하원의원)과 다섯번 째 김병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베를린의 레스토랑 '슈탠디게 페어트레퉁'의 외부 전경 ※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베를린의 레스토랑 '슈탠디게 페어트레퉁'의 내부 모습 ※ 재판매 및 DB 금지
동서독, '두 국가' 해석 갈등 속 상주대표부가 보여준 공존의 길

한독통일자문위원회…"동독에 무관심해질 때 찾아온 역사적 행운"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독일 수도 베를린의 연방의회 인근, 슈프레 강변에 '슈탠디게 페어트레퉁'(Staendige Vertretung)이라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 현대 정치사를 수놓은 주역들의 사진이 벽면을 가득 메운 이곳은 원래 옛 서독의 수도 본에 있었다. 당시 정치인들이 맥주를 기울이며 격론을 벌이고 회포를 풀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통일 후 수도가 베를린으로 옮겨가면서 레스토랑도 자연스레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정치인 대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레스토랑 내부 벽면을 언뜻 둘러봐도 유독 눈에 띄는 인물 사진의 주인공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다. 분단기에 동서독 간 평화·교류 협력의 장을 열어젖힌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다.

'슈탠디게 페어트레퉁'은 우리말로 '상주대표부'라는 뜻이다. 독일 분단기 동서독이 각각 상대 수도에 둔 연락사무소의 명칭이기도 하다. 레스토랑은 베를린으로 이전하면서 이 명칭을 차용해 새로 간판을 내걸었다. 상주대표부는 브란트 전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1972년 동독과 체결한 기본조약에 근거해 설치된 기관이다.

지난 17∼18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독통일자문위원회에서는 이 기관의 역할과 이를 둘러싼 갈등이 주요 논의 주제 중 하나로 다뤄져다. 한독통일자문위원회는 독일 통일 경험과 교훈을 공유하기 위한 한국(통일부)과 독일(재무부) 간 고위급 정례 협의체다.

◇ 서독은 '상주대표부' 동독은 '대사관', 줄다리기는 왜

상주대표부는 서독과 동독이 상대방의 체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첨예한 입장 차이가 고스란히 담긴 산물이었다.

상주대표부라는 명칭은 서독 측의 입장이 관철되면서 정해졌다. 애초 동독은 서로 대사관을 설치하기를 원했다. 체제 경쟁에서 서독에 한참 뒤처진 동독은 '두 국가, 두 민족'을 내세워 서독을 외국으로 취급했다. 서독에 흡수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한 동독은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1974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며 서독과의 연관성을 지우려 했다.

북한이 2023년 말부터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우며 '통일 지우기' 등의 작업을 벌여온 행보는 과거 동독과 유사하다.

반면 서독은 기본조약을 통해 사실상 두 개의 독일 국가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특수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서독은 동독이 외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상 외교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대사를 교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독통일자문위원인 손선홍 독일정치문화연구소장은 "서독은 동독의 상주대표부 공무원들에게 외교관 여권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통일 조항이 명시된 서독의 기본법(헌법)에 따른 조치였다.

동독은 대사관 설치를 포기했지만, 동베를린에 설치된 서독 측 상주대표부 직원들에게 외교관 신분을 부여했다. 동독은 자체적으론 본의 상주대표부를 '서독대사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독이 상주대표부를 총리실 산하에 두어 외교적 색채를 띠지 않게 한 반면, 동독은 상주대표부를 외무부 산하로 지정하는 등 온도 차가 뚜렷?다.

◇ "서독 측 상주대표부서 동독 주민들 통일 열기 미리 경험"

서독은 동독과의 관계에서 대체로 통일을 앞세우지 않았다. 애초 동서독 간 기본조약은 평화·교류 추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독 측 상주대표부도 이런 역할에 충실했다. 동독 정부와의 직접적인 창구로 기존조약의 후속 조치로,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 등에 관한 협상이 이뤄졌다.

서독 측 상주대표부는 동독 주민들과도 직접적으로 접촉했다. 대표부 부지 내 가든 하우스에서 개최된 리셉션에는 작가와 기자, 과학자, 배우 등 많은 동독 주민이 초대됐다. 옛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는 1984년 한 해에만 동독 주민 950명이 서독 측 리셉션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했다.

과거 서독 측 상주대표부에서 근무했던 한스-헤르만 로헨 씨는 자문위원회에서 "이러한 만남을 통해 친분과 우정이 형성됐고, 이는 1989년과 1990년 통일 열기를 미리 소규모로 경험하는 장이 됐다"고 회고했다.

결국 상주대표부는 동서독 간 연결 채널이자 교류의 한 형태이기도 하면서도, 양측 간에 상대방을 규정하는 입장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한 셈이다.

자문위원인 박명규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상주대표부는 서독이 가치적으로 통일을 놓치지는 않되, 현실적으로 평화·교류를 우선시하며 이어 나간 상징적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측 참석자인 요하네스 루데비히 전 연방경제부 차관은 "통일은 누가 원한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라며 "평화·공존을 구축하면서 통일을 위한 조건이 만들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통일의 산증인들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통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그동안 이구동성으로 평가해왔다. 동서독 간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동독에 대한 서독의 무관심이 점점 커질 때 통일의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 여론조사 결과 추이만 보더라도 서독 주민들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나 동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던 시기였다.

그러나 동독 주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고,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동유럽에 개방 노선을 적용하면서 철옹성 같던 동독의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졌다.

통일 과정에서 주요 실무자였던 루데비히 전 차관은 이를 "역사적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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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bin@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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