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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은 1987년 이후 완성돼가는 듯했던 한국 민주주의를 최대의 시험대에 올린 사건이었다.
여의도 하늘에 헬기가 날아들고, 중무장 계엄군의 군홧발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진입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1980년 광주'의 기억을 깨우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명령'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로제의 '아파트' 등 발랄한 리듬의 K팝은 새로운 민중가요가 돼 집회 현장에 울려 퍼졌다.
"내 인생에서 꺼지지 않을 가장 소중한 빛"이라며 한 여학생이 들고나온 응원봉은 어느샌가 무수히 광장을 뒤덮었다. 로이터통신은 "응원봉이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123일 동안 17차례 열린 집회에서 1천만개(주최 측 추산 연인원)의 응원봉이 서울 도심의 밤을 밝혔고, 마침내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끌어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은 살아 꿈틀대는 선언으로 바뀌었다.
집회에 참여했던 대학원생 김모(25)씨는 "이전까지는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좋은 제도지만 절차적으로는 복잡해 오히려 정의 구현을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감이 있었다"며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서 '이게 진짜 민주주의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이 정상화됐다는 건 가장 큰 성과"라며 "폭력적이고 비민주적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정상적인 대의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유권자의 공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들이 상경한 농민 시위대의 트랙터와 함께 남태령을 넘는 모습은 '탄핵 이후의 광장'을 준비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이 '남태령 대첩'은 노동·농민단체에 대한 릴레이 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트랙터 시위를 이끈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광장은 시민들이 각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사회 대개혁을 이야기하며 성장하는 공간이었다"며 "(탄핵 촉구 집회를 계기로) 지금도 사회적 약자의 투쟁 현장에 연대를 이어 나가는 등 시민들의 관심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탄핵 촉구 집회를 주도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지난 7월 활동을 마치며 111개의 개혁 과제를 새 정부에 전달했다. 여기엔 내란 종식 외에도 민주주의 강화와 노동권 보장, 복지 확충,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비상행동 공동상황실장을 맡았던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수사와 재판만으로는 국가의 전체적 문제를 치유하기 어렵다"며 "진상조사와 더불어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줄이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다양한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겨울은 '응원봉'과 '태극기'로 공동체가 쪼개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철저한 내란 종식'과 '완전한 국민 통합'이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가지 과제 앞에서 진통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나라가 구조적으로는 정상화됐지만, 사법·검찰개혁 등이 마무리되지 않으며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2년 반 동안 나라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고 국론 분열의 배경을 살펴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5년 동안 내란 극복만 외친다면 성과를 이뤄낼 수 없다"며 "정부와 여당이 특정인을 혼내주겠다며 강성 지지층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제도를 존중하며 통합적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응원봉이 남긴 숙제는 산적해 있지만,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의 자신감은 더 단단해졌다.
대학생 김민서(23)씨는 "'다시 만난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단언하면서도 "역사의 고비마다 큰 힘을 발휘해 신화를 써 내려갔던 우리 시민들의 저력을 생각한다면 어떤 위기든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away777@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