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3.0] 울면서 한국생활 버티던 소녀, 이제는 다문화 청소년 버팀목

기사입력 2025-12-08 08:03

촬영 천경환 기자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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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출신 충북대생 파시니나 야나, 한국어교육·진로지도 등 봉사 앞장

청주시 시민 홍보대사로도 활약…"이주민 위한 맞춤형 지원센터 설립 꿈꿔"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지금의 외로움이 언젠가 도움이 될 거야. 울어도 괜찮아. 포기하지 않으면 너희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 있어"

부모 생계로 한국에 온 고려인 파시니나 야나(24)씨는 과거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4세인 야니씨는 2017년 겨울 청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왔지만, 언어 문제로 고등학교에 바로 진학하지 못해 인근 증평의 한 중학교를 6개월 정도 다니다가 청주농업고등학교에 뒤늦게 입학했다. 이후 충북대학교에 입학해 러시아언어문화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현재 청주시의 첫 외국인 시민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할은 시청에서 전달받은 정책 관련 글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6천∼8천명이 활동하는 외국인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는 일이다.

축제나 지역행사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통역 요청이 오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야나씨는 고려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과 진로 지도를 하고, 외국인이 지역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동네 생활지도'를 제작하는 주민자치위원회 활동까지 하며 이주민의 한국 정착을 돕고 있다.

청주에서의 삶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언어장벽에 좌절했고, 정서적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는 "기본적인 한국어조차 몰라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며 "부모님이 교대 근무로 바빠 집안 살림에 동생들도 돌봐야 했는데 마음 둘 곳이 없어 매일 울면서 지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래도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교내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그 결과 한국어 실력이 크게 늘어 마음의 벽이 조금씩 낮아졌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소년 시절 겪었던 어려움이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주 배경 청소년이 겪는 문제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야나씨는 "이주 배경 청소년 중 특히 사춘기 중학생은 돌봄 공백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인지 이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자퇴율이 높고, 만나는 학생 중에는 하고 싶은 것도 꿈도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올해 2월 학과 교수님과 함께 고려인 고등학생 동아리를 만들었다"며 "한 달에 한 번 체육활동, 여행, 봉사활동 등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을 믿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봉사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본인이 더 많이 배웠다고 한다.

그는 "한국어 교육을 받던 한 학생이 '선생님 덕분에 꿈을 찾았다'라고 말해줬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발표조차 어려워하던 학생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전했다.

야나씨는 미래에 외국인 가정과 이주민을 위한 맞춤형 지원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꿈이 있다.

지역 복지관과 외국인센터 등을 통해 한국어 교육과 정착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개별 상황에 맞는 체계적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가장 속상했던 점이 바보가 아닌데 점수가 10점, 15점 밖에 나오지 않던 상황이었다"며 "센터에서는 생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지만 실제 수업과 시험에 필요한 한국어를 배우기 어려워 이런 부분을 채워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국인이 대학에 진학하려면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은데 이를 안내해 줄 정보가 부족하다"며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은 혼자 걷지 않도록 길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kw@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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