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20년 숙원으로 꼽혀온 '노란봉투법'이 지난달 10일 시행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마주할 교섭권이 생겼지만, 현장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있다.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 자체를 원청이 무시하거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두고 노사 갈등이 확산하면서 법 시행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교섭 테이블에 마주한 원청과 하청 노조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노조 측은 올해를 원청 교섭의 원년으로 삼고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쟁취하겠다며 오는 7월 1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 노란봉투법 시행 속 분쟁 계속…공공 부문도 답보
8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후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해 노사 간 상견례가 이뤄진 사례는 현재까지 0건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사용자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원청이 하청 노조 등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할 수 있을 경우 교섭 의무가 부여된다.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 사용자는 이를 받은 날부터 7일간 공고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를 무시하며 공고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달 6일 기준 하청 노조 985곳이 원청 367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는데, 이를 공고한 원청 사업장은 31곳에 불과했다.
전호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변인은 "이게 한국 사회 '진짜 사장'들의 모습이고 한국 노동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노동계는 사용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시정 신청을 신중히 제기하고 있다.
전 대변인은 "우선은 사용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 현황을 파악해야 하고, 시정신청시 증거 및 자료 등을 내야 하는 만큼 충분히 준비할 필요가 있어 확실한 사건 약 20건에만 시정 신청을 제기했다"며 "법률원과 함께 어느 기관부터 법적 쟁송 절차를 밟을 지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공 부문부터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노사 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 교섭을 지연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고용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원청과 하청 노조가 교섭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틀 안에서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활용하도록 했다.
노조 간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자율적으로 우선 진행하도록 하되 절차 중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노조 측은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노란봉투법 미완의 이유로 꼽는다.
이들은 법 시행 전부터 "단체교섭이 지연되고 교착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교섭창구 단일화를 반대했다.
지방노동위에서 시정 신청과 교섭단위 분리 등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더라도 중노위 재심, 행정소송 등의 절차로 나아갈 수 있어 노사 분쟁은 당분간 평행선을 달릴 전망이다.
◇ 노사 본격 교섭 5월 이후 전망…노조 7월 '하투'(夏鬪) 예고
노란봉투법 시행에도 노사 분쟁이 거듭되면서 노사 간 대화의 장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원청의 교섭요구 사실 공고 후에 교섭단위 분리에 들어가지 않은 일부 사업장에서 상견례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아직 교섭 테이블에 마주한 노사는 없다.
SK인텔릭스는 하청 노조와의 상견례 일정을 이르면 4월 둘째 주에 잡는 것으로 내부 조율 중이다.
이 외에 몇몇 사업장에서 4월 말∼5월 초 상견례 일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 상견례가 이뤄진 후 실제 교섭은 5월 이후에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 전문가들은 법 시행 전에 우려됐던 큰 혼란은 없었으나 법이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전에 우려됐던 큰 혼란까지는 없다"면서도 "노란봉투법이 노사 모두 불만이 있는 채로 출발해 제도 안착이 수월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용자는 교섭 의무를 알면서 시간을 끄는 식으로 임하지 않고, 노조는 교섭 권한이 생겼다며 무리한 요구와 파업하는 식으로 악용하는 걸 막아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올해를 원청 교섭의 원년으로 삼고 원청 교섭을 쟁취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원청 교섭 촉구와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등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오는 7월 15일 총파업을 단행할 계획이다.
ok9@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