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는 많은 것이 담겼다. 길과 길 사이에는 마을이 있고, 그 속엔 사람이 산다. 음식을 비롯한 문화와 역사도 길을 따라 움직인다. 저마다의 사연도 품고 있다. 길을 따라 걷는다는 건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그 이상의 재미를 발견하는 좋은 여행법이다. 코리아둘레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총 4500km. 코리아둘레길은 동해안(해파랑길)과 서해안(서해랑길), 남해안(남파랑길)과 DMZ 접경지역(평화누리길) 등 한국을 하나로 연결하는 국내 대표 트레킹 코스다. 코리아둘레길을 즐기는 법은 다양하다. 우선 완주다. 국내 대표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승우여행사의 이원근 대표는 "코리아둘레길 완주를 위해 매주 주말 쉼 없이 꼬박 걸으면 4~5개월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지난 5월 말 기준 총 완주자는 251명에 불과하다. 기왕 시작했다면 한 번에 끝을 보면 좋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길을 찾아 나만의 코리아둘레길 코스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첫 시작부터 어려울 필요는 없다. 대부분 코리아둘레길은 가족과 함께 즐길 테니 말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가 있는 곳. 강진과 해남은 코리아둘레길의 좋은 시작점이다.
강진, 길 위에서 만난 정약용 '남파랑길 83코스'
코리아둘레길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남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강진을 코리아둘레길의 긴 여정의 시작점으로 고른 건 머리에 쏙쏙 박히는 친근함 때문이다. 정약용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지역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다.
강진의 코리아둘레길은 남파랑길에 속해 있다. 처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남파랑길 83코스. 이른바 정약용 테마길이다. 물론 정식 명칭은 아니다. 그러나 길에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진은 조선시대 대표 지식인으로 꼽히는 정약용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호가 다산인 것도 강진과 연관이 있다. 남파랑길 83코스에 있는 만덕산은 예로부터 야생차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정약용은 차를 좋아했고, 강진에는 차가 많은 산이 있었으니 '다산'이라는 호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특히 다산초당이 있는 곳도 강진이다.
남파랑길 83코스에서 다산 정약용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은 다산초당이다.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 가운데 11년을 다산초당에서 보냈고, '목민심서'를 비롯해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특히 다산초당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길에 오를 당시 강진에 들러 직접 써줬다고 한다.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길은 다산초당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무난한 평지 코스인 작은 마을길을 지나면 숲길이 시작된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결코 쉽게 봐선 안 될 길이다.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할 무렵 마주한 다산초당. 첫인상은 작은 목조 건물로 수수해 보이지만, 툇마루에 걸터앉아 풍경을 즐기다 보면 마음의 평안함이 느껴진다. 건물 옆에는 작은 연못도 있다.
다산초당에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백련사가 나온다. 정약용은 유배 생활 중 당시 백련사의 주지스님이었던 혜장선사와 지적 교류를 했다고 한다. 유배지에 내쳐진 그에게 혜장선사는 오랜 벗인 동시에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백련사로 향하는 길에 수없이 새겨진 정약용의 발자취에는 고뇌와 벗을 만나려는 즐거움이 함께 담겨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산길을 통하면 30분 남짓 소요된다. 그러나 아이와 어르신이 함께하는 길이라면 그대로 내려와 백련사로 향하는 차량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고 카카오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백련사는 남파랑길 트레킹 코스가 아니더라도 강진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백련사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입구에서 중간 지점을 조금 지나 녹차밭으로 향하는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님들이 재배하는 차밭으로, 예로부터 이곳을 다산이라 불렀던 이유가 눈앞에 펼쳐진다.
해남, 남파랑과 서해랑의 만남 '모두에게 열린 길'
가족과 함께 코리아둘레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해남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우선 해남에는 땅끝마을이 있고, 서해랑길(1코스)과 남파랑길(90코스)이 만나는 곳이다. 무엇보다 남녀노소 누구나 여유롭게 코리아둘레길을 즐길 수 있으며, 땅끝탑 옆에는 쩌렁쩌렁 울리는 종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좋은 신호다.
해남 땅끝탑으로 향하는 길은 해안가를 따라 데크길이 조성돼 있다. 경사가 거의 없어 휠체어도 편안하게 오갈 수 있으며, 멋진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코리아둘레길 구간 중 하나다. 데크길 곳곳에는 스카이워크가 설치돼 있어 바다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이곳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해 질 녘을 추천한다. 탁 트인 바다와 그곳에 몸을 감추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노을빛이 아름답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데크 곳곳에 설치된 조명이 운치를 더한다.
해남의 길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다. 강진에 정약용이 있다면 해남에는 이순신이 있다.
해남에 있는 울돌목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곳이다. 울돌목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명량해전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울돌목은 최대 유속이 초속 6.5m에 달하며, 유속이 빠르기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울돌목 주변에는 전장을 누볐던 판옥선을 재현해 놓았다. 우수영관광지에서는 거북선 등을 비롯해 당시 사용된 무기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 시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해남이 코리아둘레길의 시작점으로 매력적인 것은 편안한 숙박 인프라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해남126 오시아노 호텔이 있어 풍경 좋은 객실을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전 객실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때 더욱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동양식 구조가 이용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열린관광지의 특성을 고려한 베리어프리 객실도 운영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저상형 침대를 비롯해 옷장과 화장실 등 곳곳에 세심한 배려가 배어 있다. 주변에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 점은 단점으로 꼽힐 수 있다. 그러나 코리아둘레길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주변 풍경에 집중하며 걸을 수 있게 만든다.
해남의 코리아둘레길을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해남 꿈카를 이용해보자. 해남 꿈카는 대중교통 이용객을 위한 서비스로, KTX를 이용해 나주역에 도착한 뒤 약 10만 원에 이용할 수 있는 캠핑카(2인용~5인용)를 말한다. 해남 꿈카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으며, 숙박지는 오시아노 캠핑장(무료)이다.
김광식한국관광공사 지역개발기획팀장은 "해남은 땅끝으로써의 의미와 함께 남파랑길의 종점과 서해랑길의 시점이 만나는 코리아둘레길의 전환점으로서의 의미도 있다"며 "코리아둘레길의 자연풍경을 그대로 담은 해남126호텔과 연계하여 더 많은 관광객에게 지역관광의 매력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