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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에 패한 中 커제 "현란한 수에 정신 혼미, 어떻게 졌는지도 모르겠다"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8-01-13 18:17


◇이세돌 9단(오른쪽)이 중국의 커제 9단을 상대로 2018해비치 바둑대결에서 한집반승을 거뒀다. 두 기사의 대국장면. 사진제공=타이젬

"커제 9단이 양보해줘서 가까스로 이겼다."(이세돌)

"선배님이 하도 현란하게 두셔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떻게 졌는지도 모르고 졌다.(웃음)"(中 커제)

인공지능 알파고에 맞서 싸운 두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의 '인간 바둑'의 진수를 보여줬다.

13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8 해비치 이세돌 vs 커제 바둑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293수 끝에 흑 1집반승을 거뒀다. 경기전 "커제 9단에게 빚이 너무 많아 오늘 갚고 싶다"고 했던 이세돌 9단의 말대로 됐다.

결과가 말해주듯 엎치락 뒤치락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진땀승부가 펼쳐졌다.

초반은 평소와 다른 공격적인 포석을 들고 나온 이세돌 9단의 페이스. 하지만 중반에 이세돌 9단의 무리수가 나오면서 판세는 커제 9단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커제 9단이 강수를 선보이면서 국면은 다시 혼미해졌으나 우하변에서 벌어진 '초대형' 패싸움에서 커제 9단이 과감한 바꿔치기를 감행하면서 백의 승리가 유력해졌다. 하지만 잠시 기분에 도취됐을까. 커제 9단의 완착(백 196)이 곧바로 나왔고, 이세돌 9단의 눈빛이 반짝였다.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고, 결국 1집반 신승을 일궈냈다.

투혼과 집념, 정신력, 그리고 초읽기에 몰려 발생한 미세한 실수, 오로지 '인간 바둑'에서만 볼 수 있는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응축된 한 판이었다.


◇대국 후 소감을 말하고 있는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 사진제공=타이젬
이날 두 기사는 경기 외적으로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세돌 9단은 "커제 9단은 세계최고의 기사이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성장가능성이 무한하다"며 "언젠가 알파고를 이겨주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당시 "이세돌은 인류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커제 9단은 이날 이세돌 9단을 언급할 때마다 '선배'라는 존칭을 써 예의를 갖췄다. 경기후 "이세돌 9단은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이라며 "특히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 선배님께서 아주 다채로운 테크닉을 다 보여주셨다. 정말 힘들었다"며 혀를 내둘러 공개해설장을 찾은 200여 바둑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두 기사는 2015년 11월 처음 만나 2016년 11월 마지막 대국을 벌였다. 이날 대국전까지 이세돌 9단은 공식 전적에서 3승 10패로 커제 9단에게 크게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날 승리로 자존심을 되찾았다.

'2018 해비치 이세돌 vs 커제 바둑대국'의 제한시간은 각자 40분에 초읽기 1분 1회씩이 주어졌다. 승자인 이세돌 9단은 상금 3000만원과 현대자동차 소형 SUV '코나'를 받았고, 커제 9단은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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