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012년 런던, 세월만큼 달라진 대한민국

기사입력 2012-07-18 09:40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1948년과 2012년. 강산은 6번 변했다. 한국스포츠는 그보다 더 많이 달라졌다.

런던올림픽, 의미가 남다르다. 1948년, 그 곳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가 열렸다. 광복후 태극기를 들고 첫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그 때와 지금,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한국의 스포츠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당시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 때를 한번 돌아보자. 태극전사들이 왜 더 많은 땀을 흘렸는지, 대한민국은 왜 더 큰 응원을 해야하는 지 역사가 말해준다.

1948년 런던올림픽은 12년만에 재개된 올림픽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0년 도쿄, 44년 런던올림픽이 열리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7개 종목, 총 6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서윤복 등이 나서는 마라톤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 외 종목에서는 참가에 의의를 뒀다.

사실 출국하기까지가 만만치 않았다. 경비가 문제였다. 그 때의 대한민국은 가난했다.

할수없이 국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올림픽후원회에서 '올림픽후원권'을 발행했다. '대한체육회칠십년사'에 따르면, 1947년 12월에 판매된 후원권은 100만장이 넘게 팔렸다. 약 8만달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적 장도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1948년 6월18일에 시민환송회, 20일에는 환송 모성대회가 열렸다. 초대국회는 올림픽출전선수들에게 격려의 메시지까지 보냈다. 대한민국의 관심은 그만큼 뜨거웠다.

런던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선수단은 배와 기차, 비행기를 13차례나 갈아타며 21일의 긴 여행을 했다.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쳤다고 한다.

지금과 비교해보자. 이번 올림픽에 한국은 22종목에 245명의 선수를 파견한다. 여기에 금메달을 따면 공식포상금이 6000만원이다. 각 단체들의 추가 보너스도 있다. 축구는 금메달에 약 31억원을 내걸었다. 배드민턴은 개인전 금메달에 4억원을 얹어준다. 하키에는 남녀 각각 2억5000만원의 보너스가 준비돼 있다. 기업들의 격려금도 쏟아지고 있다. 가난한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렇게 출전한 올림픽,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역도에 출전한 김성집이 동메달을 땄다. 첫 메달이었다. 복싱에서는 한수안이 동메달을 추가했다.

기대했던 마라톤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최윤칠이 27㎞부터 선두로 나서 40㎞까지 금메달의 꿈을 부풀게 했다. 하지만 다리경련으로 주저 앉고 말았다. 보스턴대회를 재패했던 서윤복이 27위에 그쳤다.

축구에서는 우연치고는 의미있는 대결을 펼쳤다. 첫 상대가 멕시코였다. 이번 올림픽과 같다. 한국은 26일 오후 10시30분에 멕시코와 예선 첫 경기를 펼친다.

당시 현지에서는 멕시코의 8대2 승리를 예상하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한국이 멕시코를 이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평가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강했다. 5대3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최성곤 정국진(2골) 배종호 정남식의 각각 골망을 흔들었다. 16개국의 토너먼트여서 곧바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는 스웨덴과 만났다. 0대12로 무너졌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첫 출전에서 8강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국민의 성원과 선수들의 땀방울은 대한민국을 세계 24위에 올려놓았다. 59개국과의 경쟁속에서 올린 성과였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다음이었다.

다시 밟는 역사의 현장 런던이다. 이제 스포츠강국이 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신보순 기자 bsshi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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