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좌절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50m 권총에 출전했다. 본선 1위로 결선에 올랐다. 하지만 7번째 발에서 6.9점(10.9점 만점)을 쏘는 실수로 은메달에 그쳤다. 쓰러지지 않았다. 불운을 떨쳐내기 위해 2세 계획까지 미뤘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 결선에서 단 한 번만 선두를 내주는 집중력으로 퍼펙트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또 한번 좌절을 환희로 바꿨다. 베이징올림픽 10m 권총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머무른 진종오는 런던에서 금빛으로 색깔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진종오는 남들보다 늦게 사격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지인의 소개로 총을 처음 잡았다. 남다른 의지와 노력으로 금새 정상급 선수로 떠올랐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학교 때는 운동을 하다가 어깨를 크게 다쳐 금속을 몸 안에 대는 수술을 받았다. 1년 동안 재활하며 총을 놓을까도 고민했다. 2002년 경찰체육단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지만 수술 부위가 아파 장시간 연습이 불가능했다. 이 때부터 하루에 몇 발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발을 잘 쏘기 위해 연습했다. 어깨에 좋다는 수영도 병행했다. 방안에서 쉴 때도 아령을 놓지 않고 공기총으로 표적지를 조준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다. 단 한발의 실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종목이다. 정신적으로 무너지면 아무리 압도적인 기량을 갖고 있어도 메달을 따기 어렵다. 베팅업체들이 진종오를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을때도 그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주변의 기대가 커질수록 더욱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대회 전 즐겨하던 SNS도 끊었다. 결국 진종오는 한국에 2012년 런던올림픽 첫 금을 안겼다.
진종오에게 이번 올림픽이 뜻깊은 이유는 또 있다. 아내 권미리씨 뱃속에 있는 아기가 올 11월 말 세상 빛을 보게되기 때문이다. 2006년 결혼 후 6년만에 가진 아이다. 태명을 아내와 자신의 이름 마지막자를 따서 '리오'라고 지었다. 진종오는 런던으로 출국 전 아들 앞에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