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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진종오(33·KT)가 6차와 7차 발사에서 9.3점, 9.0점을 쏘며 삐끗했다. 한국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아내 권미리씨(30)의 심장 박동수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저멀리 런던에서 수많은 압박감과 싸우는 남편을 생각했다. 그리고 믿었다. '어떻하지'말고 '다음번에 몇점 이상 쏘면 되겠구나'하며 남편과 함께 경기를 치렀다. 모두가 숨을 죽인 마지막 발사. 진종오는 10.9점 만점에 10.8점을 쏘았다. 반면 루카 테스코니(이탈리아)는 9.7점으로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진종오는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침내 권씨도 웃었다.
그래도 마음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대표로 확정되고 나서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주변의 기대가 커지며, 즐겨하던 페이스북도 끊었다. 권씨는 남편의 부담을 줄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먼저 스스로 기대치를 낮췄다. 기도나 부적 같이 부산스러운 응원도 일체 하지 않았다. 런던으로 가기 전날에도 "나 선물 사러가는 거라고 생각해"라고 했다.
그래도 내심 자신감은 있었다. 주종목인 50m 권총보다 10m 권총에서 일을 낼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권씨는 "훈련을 마치고 통화를 할때마다 10m 권총이 더 감이 좋다고 했었어요. 꾸준히 좋은 점수대가 나온다고 만족해했구요. 오히려 50m를 더 힘들어 했었어요. 그래서 금메달이 나온다면 10m 권총이 더 유력하다고 생각했죠"라고 털어놨다.
아내가 본 남편 진종오는?
권씨는 경기장에 있는 남편 진종오가 아직도 낯설다. 진종오는 집에서는 자상하고 애교도 많다. 장난도 잘친다. 그러나 권총만 잡으면 180도 달라진다. 얼음장 같이 냉정하고 침착해진다. 권씨는 평소 생활습관을 이유로 꼽았다. 진종오는 항상 메모를 하는 습관이 돼 있다. 집에서도 수첩을 곁에 두고 작은 일이라도 꼼꼼히 적는다. 집에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고 했다. 진종오가 늦은 나이에 사격에 입문했음에도 한국의 사격사를 다시 쓰고 있는 이유다. 보통 선수들이 늦어도 중학생 때 사격을 시작하는 데에 비해 진종오는 강원사대부속고 1학년 때인 1995년 '늦깍이'로 시작했다. 부친의 지인이 장난감 총을 좋아하고 총 모형 조립을 즐기던 모습을 눈여겨보고 '사격을 한번 시켜보라'고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이런 꼼꼼한 생활태도는 멘탈싸움이 승부를 좌우하는 사격에 딱이었다.
취미도 낚시다. 쉬는 시간에도 무심으로 돌아가 이미지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대회 직후에는 아내와 KT 전무가 선물한 '일만시간의 법칙'과 '와칭'이란 책을 읽으며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진종오가 실수 후 빠르게 자기페이스를 회복하는 것은 이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태명 '리오', 2016년 올림픽 뛰라는 계시?
권씨는 홀몸이 아니다. 임신 6개월째다. 2006년 12월 결혼한 후 6년만에 그토록 원하던 아이가 생겼다. 태명은 권미리의 리와 진종오의 오를 따 '리오'로 정했다. 공교롭게도 2016년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다. 권씨는 "태명을 리오로 정하고 나서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요. 2016년 올림픽에도 나가라는 하늘의 계시인거 같다고"라며 웃었다. 그녀는 "지도자의 길도 좋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오래 선수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외국을 봐도 유명 사격 선수들은 다 연령대가 높더라고요. 롱런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진종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 올림픽은 4년이나 더 있어야 하는 시간이고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국내 선발전이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된다면 열심히 도전하겠다"고 했다.
권씨는 남편이 돌아오면 올림픽때문에 하지 못했던 낚시 데이트도 하고, 아이방도 꾸밀 생각이다. 그리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애기도 생기고 해서 많이 말은 안해도 부담도 됐을텐데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들 후배들한테 보여줬으면 좋겠어, 항상 1등은 할 수 없는 것을 잘알아. 언젠가 내줘야 하는 자리인만큼 그전까지 후배한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어. 너무 수고했고, 그리고 사랑해."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