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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한 시니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딸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고예닮은 담담하고 침착했다. 예기치 않은 동메달에 수줍은 미소를 지었을 뿐, 들뜬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니어 무대 첫 메달 후 하룻밤새 많은 일을 경험했다. 난생 처음 외국기자들이 몰려든 기자회견에 나섰다. 난생 처음 도핑테스트도 받았다.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2시간 넘게 애도 먹었다. "이런 것도 하는구나, 신기하다"며 웃었다.
고예닮은 수원 영화초등학교 4학년때 빠른 발과 운동신경을 눈여겨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체조를 시작했다. 이후 줄곧 에이스의 길을 걸었다. 지난 7월 KBS전국체조대회 5관왕에 올랐고, 10월 대구전국체전에선 12년만에 모교 수원농생고의 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다. 체전에서 개인종합 우승후보로 손꼽혔지만 이준호(17·충북체고)에게 1위를 양보했다. 고예닮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고 했다. "손목 부상으로 출전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은메달까지 따게 돼 감사했다"고 했다. 담담한 성격은 목사님인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늘 말없이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또래들이 겪는 방황이나 슬럼프도 없었다. "아파서 쉰 적은 있지만 하기 싫어서 도망간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물론 힘들다. 그런데 힘들다는 생각을 아예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단순하게 할 일만 생각한다"며 웃었다. 고예닮은 여전히 체조가 재밌다. 무엇보다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이 재밌단다. 또래들과 함께 나선 생애 첫 국제대회도 "떨리기보다 재밌었다"고 했다.
고예닮은 걸출한 대표팀 선배 김승일(27 한양대 대학원)을 쏙 빼닮았다. 김승일은 영광고 3학년 때인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마루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태극마크를 단 첫해 열린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0년간 남자체조 간판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고예닮 역시 졸업을 앞두고 나선 첫 국제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내년 초 한양대에 입학, 김승일의 직속 후배가 된다. 눈부신 스타덤을 예고하고 있다. 생애 첫 아시아선수권 동메달의 의미를 스스로 "출발"이라 정의 내렸다.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는 덕담에 "노력해야죠"라며 짧게 답했다. '출발대'에 선 고예닮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울 것같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