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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성, 다!한! 증!"
조기성은 "레이스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엄청 몰입했거든요. 1등 한 줄도 몰랐어요. 세리머니도 늦었어요. 전광판 '49초'를 보고, '굉장히 좋은 초네' 했는데 그게 제 기록이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금메달 순간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결선 5위 기록이었고, 동메달 아니 4등도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기회가 오니 욕심이 생겼어요. 메달을 너무 따고 싶어졌죠." 하지만 조기성은 승부처에서 마음을 비웠다.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열었다. "현장에 동행하신 이금진 심리선생님(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께서 '얼굴에 욕심이 그득하다'고 짚어주셨어요. 선생님께서 '(배형근)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해봐라. 계속 한두 가지 고집을 부리고 있다. 메달보다 기록에 중점을 두는 선수가 되면 좋겠다. 평영 기록이 잘 나오면 IM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어요."
금메달 직후 휠체어에 오른 그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리우 3관왕'은 도쿄패럴림픽을 앞두고 격전지 자유형에서 평영으로 종목을 바꿨다. 메달을 위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첫 도전은 시련이었다. 코로나 시기 훈련양이 줄었고 등 뒤에선 "살쪘다" "이제 안된다"는 비판도 들려왔다. '역사가 되어 돌아오겠다'던 도쿄패럴림픽에서 6위를 기록했고, 조기성의 평영은 그렇게 끝나는가 했다. 스스로에게도 실망한 시기, 은퇴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박수 받으며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련 속에 그는 더 단단해졌다. 선천성 뇌성마비로 상체, 양팔로 물살을 가르는 그는 맨체스터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벤치프레스를 105㎏까지 드는 등 근력을 끌어올렸다. 평소 관심 있던 심리 공부로 진로를 정하고, 북클럽 모임에도 나가면서 마음의 근력도 키웠다. "세상에 힘든 사람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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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성은 직업도 선수, 꿈도 선수인 천생 선수다. "비장애인으로 태어났다면 축구나 야구선수를 했을 것"이라더니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수영선수가 됐지만 사격선수도 좋다. 수영선수는 늘 물이 있어야 하는데 사격 선수는 그냥도 멋지지 않나?"라며 웃었다. 좋아하는 선수로 손흥민과 '보치아 레전드' 정호원을 꼽았다. "손흥민 선수는 인터뷰를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 어떻게 저렇게 겸손하고 훌륭할까. 진짜 '월클(월드클래스)' 마인드잖아요. 정호원 선수도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어요.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라며 웃었다.
자카르타-팔렘방장애인아시안게임 자유형 50m·100m·200m에서 은메달 3개를 따낸 조기성은 10월 항저우대회에서 평영, 자유형, 개인혼영 등 6종목에 출전 가능하다. 조기성은 "종목을 택할 수 있단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대회에 나가는 감사함을 최근에 새삼 깨닫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 파리패럴림픽까지 하던 대로, 하던 것 쭉 열심히 할 생각"이라며 "이번 금메달 후 '다시 돌아온' 리우 영웅이라는 기사가 많았어요. 저 늘 여기 있었거든요. 지난 8년간 여기서 계속 수영하고 있었어요. '돌아온 영웅'이란 칭호도 감사하지만 '장애인 수영'하면 조기성을 떠올리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천(경기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