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시위는 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터도 존중해주세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시위의 직격탄을 맞은 핸드볼경기장 입주 대한민국 체육단체들이 11일 일상 복귀를 희망하며 집결했다. 시위대가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티켓링크 라이브아레나) 개표소를 엿새째 봉쇄하면서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준비, 국제대회 출전 지원에 눈코뜰새없이 바쁜 체육단체들의 업무가 완전히 마비됐다. 현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는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핸드볼협회, 대한펜싱협회, 대한산악연맹, 대한우슈협회, 대한세팍타크로협회, 대한수중핀수영협회, 대한당구연맹,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 대한수상스키·웨이크스포츠협회 등 9개 종목 단체가 입주해 있다. 시위대가 출입구를 막아서면서 일상적인 행정 업무 및 국가대표 지원, 국내외 대회 유치 및 출전에 비상이 걸렸다. 사무실 내 컴퓨터에 저장된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를 가져올 수 없어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 급여 지급은 물론 국제대회 출전비 지원 및 장비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주 인도 아시아선수권 출전을 앞둔 펜싱대표팀은 출전비 지급 기일을 놓쳤고, 훈련용, 경기용 칼도 꺼내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 시드가 좌우되는 중요한 대회다. 이달 말 인천에서 세계선수권을 유치한 대한수중핀수영협회도 개막을 2주 앞두고 초비상이다. 13일로 예정된 스포츠지도사 시험을 위한 서류와 정보, 장비들도 모두 사무실에 있는 상황이다.
체육단체들은 11일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앞에서 호소문을 낭독했다. "시위는 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터도 존중해주세요"라는 제하의 호소문에서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NHN티켓링크 아레나)에 생활터전인 사무실을 두고 일해 온 체육단체의 임직원들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의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섰습니다"라고 밝혔다. "6월 5일부터 오늘까지 7일째, 우리는 매일 출근하던 우리의 사무실에 단 한 걸음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소 봉쇄 집회로 경기장 출입구 전체가 막혔고, 그 안에 갇힌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일터입니다"라면서 "우리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낼 권리, 집회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일부 직원들은 사실상 사무실에 갇혀 창문을 넘어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출근하려던 직원들은 신분증을 검사당하고, 몸과 가방을 수색당했으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 앞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일을 하려 했을 뿐입니다. 일을 하려는 사람이 왜 이런 두려움을 겪어야 합니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시위대와 정부를 향해 호소했다. "하나, 우리의 일터를 돌려주십시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의 업무라도 볼 수 있도록 존중하고 길을 열어 주십시오. 하나, 정부와 관계기관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고가 난 뒤에 나서지 말고, 지금 즉시 나서 주십시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입주 단체와의 면담에 응하고 실질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십시오.하나,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태의 원인을 직시하고, 우리의 일터를 정상화할 책임 있는 방안을 조속히 내놓으십시오. 우리도 시민입니다. 매일 성실히 일해 온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국 체육을 떠받쳐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일상을 돌려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호소문 낭독 집회마저 사실상 봉쇄됐다. 일부 극렬 시위대가 "부정선거" "재투표" 구호를 외치면서 집회를 방해하고, 스피커 앰프 전원을 차단해 호소문을 다 읽지도 못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체육단체 직원들이 마스크를 쓴 것과 관련해 "떳떳하면 마스크 벗어!" "얼굴 까!"라고 조롱하는가 하면 선량한 체육인들을 선관위나 정치적 세력과 관련된 '스파이' '빨갱이'로 오인하기도 했다. 체육단체 직원들이 '체육단체 직원들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출입과 업무만은 보장해주세요'라는 피켓을 든 채 "우리의 일터를 돌려달라!" "참정권도 소중하지만 국민의 체육 행복권도 중요하다"는 구호를 제창했지만 시위대의 야유와 함성에 묻혔다.
이날 핸드볼경기장 입주 체육단체 대표로 호소문을 낭독한 한 사무처장은 "호소문을 발표한 이유는 생존권이다. 우리의 일터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넘었는데 경찰도, 정부도 속수무책,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체육단체 행정이 마비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 동호인, 체육인의 몫이 됐다.
직원들은 지난 9일 창문으로 탈출한 이후 사무실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대가 신분증, 명함을 검문하고, 유소년 선수들의 소지품까지 검사하며 출입을 통제했다. 피해 사례와 관련해 경찰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일부 시위대를 고소, 고발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A처장은 "저들도 시민이고 저희도 시민이다. 법률 검토를 한 적이 없다"고 즉답했다.
그 사이 수차례의 진입 시도와 협상도 결렬됐다. 게이트마다. 시위대마다 생각이 달랐다. A처장은 "오늘도 사무실 진입에 대한 협의가 있을 것이다. 어제도 우리는 다 양보했다. 시위대 1명, 체육단체 1명이 들어가기로 했는데 시위대가 기밀과 개인정보가 있는 사무실 곳곳을 다 찍겠다고 했다. 일부 사무실엔 금고도 있고 비밀번호도 있는데, 그 번호도 찍겠다고 해서 안된다고 했다. '촬영이 안된다면 진입할 수 없다'고 해 협상이 결렬됐다. 그 부분은 우리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핸드볼경기장 내 입주해 있는 자전거 관련 사업체 대표는 "우리는 체육회 소속이 아니라 영세 사업자다. 자전거 장비와 집기들이 다 안에 있고, 어제 오늘 행사를 다 취소했다. 장기회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며 절박함을 호소했다. "한시적으로라도 경찰력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고 입주업체들이 들어가 물품을 가져올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나"라며 공권력의 개입을 촉구했다.
공권력 투입을 통한 해결 방안에 대해 A처장은 "속으로는 장기화되면 안되기 때문에 요청을 드리고 싶지만 저희가 실제로 대화를 하다보니 순수하게 시위하러 온 분들도 계신다. 이런 분들은 문을 열어주시려고 한다. 이런 분들이 열어주려고 하면 또다른 분들이 나서서 막는다. 이 사태를 이용하는 유튜브 장사꾼들도 있다. 이런 분들에겐 공권력이 투입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일은 국가대표들을 위한 용품 반출, 대금 지급을 위한 OTP, 인감도장, 주요 문서를 담은 외장하드 등이라도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만, 데스크톱으로 일하는 체육단체 업무 특성상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다른 C협회 사무처장은 "저희는 지난주 금요일에 창문으로 탈출했다. 두려움을 느꼈다. 27일 부산에서 전국 대회가 있는데 심판 패드 등 필요한 장비들이 다 사무실 안에 있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사무실 컴퓨터가 꺼져 있는 상황이라 작업이 안된다"고 했다.
선수, 체육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마지노선이 언제냐는 질문에 A처장은 "이미 늦었다. 진작 해결됐어야 한다"고 답했다. 적어도 시위가 격렬해지기 전인 금요일 이전에 해결이 됐어야 한다는 취지다. "뒤늦게나마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다행이다. 지난 금요일부터 이야기했다. 금요일에 직원들이 퇴근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이고, 직원들을 향해 시위대가 마녀사냥하듯 몰려드는 일들이 있었다. 월요일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못했다. 그래도 화요일부터 점진적으로 관심이 생겨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미 늦었다. 마지노선은 이미 지났다"고 했다.
도덕적 이탈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매우 숭고하다고 믿을 때, 도덕적 기준을 선택적으로 켜고 끄는 현상이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동료 시민의 일터를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발을 묶고 있다는 생각을 가리고, 자신들의 정의 외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정당화하면서 도덕적 가책도 느끼지 않게 되는 상황이다.
B처장은 "우리가 왜 저분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저분들이 무슨 권한이 있어 우리가 신분증을 보여줘야 되고, 사무실에도 못 들어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고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 "우리는 선수, 동호인, 종목 단체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위대와의 물리적 충돌을 꺼리는 경찰의 소극적 대응 속에 문화체육관광부도 정부 차원에서 체육단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대응책을 고심중이다. 11일 오후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체육단체 대표들을 만나 직접 현황을 청취할 예정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