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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리그' EPL, 몰락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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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캡처=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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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챔피언스리그(UCL)는 유럽 각 리그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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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로 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각각 13번, 12번, 12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전체의 65%나 된다. UCL 우승팀을 보면 '유럽축구 주기론'이라는 흐름이 존재한다. 이같은 성적의 순환은 자본력에 의해 결정된다. UCL 성적은 수입을 만들고, 이를 통해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 다시 성적으로 보상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사회과학 용어인 경제적 환원주의(reductionism)는 축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 1980년대는 독일과 잉글랜드, 1990년대는 이탈리아가 UCL에서 강세를 보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스페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000년대 중반은 단연 EPL의 시대다. EPL은 2004~2005시즌부터 5시즌 연속으로 UCL 결승 진출팀을 배출했다. EPL의 성공은 외국자본이 유입된 시점과 일치한다. 2003년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의해 인수된 첼시는 EPL의 지형을 바꾸었다. 아브라모비치는 인수 후 스타 영입에 1조원 이상의 돈을 썼다. 첼시는 곧바로 EPL과 UCL의 강호로 떠올랐다. 첼시의 성공에 고무된 EPL 클럽은 경쟁적으로 외국자본을 받아들였다. 외국자본을 등에 업은 구단은 수준급 선수와 감독을 영입했고, 이는 리그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EPL은 유럽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천문학적 중계권료를 벌어들였다. EPL은 2006~2007시즌부터 3시즌 연속으로 UCL 4강에 3팀의 이름을 올렸다. 맨유와 첼시가 결승서 만나 맨유가 우승한 2007~2008시즌은 EPL의 위세가 절정에 달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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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EPL의 위상은 4강에 한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2009~2010시즌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올시즌 들어 하향세는 두드러졌다. 첼시와 맨시티가 16강 진출에 실패하더니, 맨유와 아스널마저 8강 문턱에서 좌절했다. 17년 만에 8강에 한 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EPL의 몰락에는 '빅4(맨유, 아스널, 리버풀, 첼시)'의 부진이 1차 원인으로 꼽힌다. EPL의 UCL 성공은 빅4의 성공을 의미했다. 빅4는 5시즌 연속으로 결승전에서 한자리 이상씩 차지했다. 빅4의 아성은 EPL 내부에서부터 흔들렸다. 리버풀은 선수영입에 실패하며 그저 그런팀으로 전락했다. 아스널은 매년 핵심선수들을 떠나보내며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첼시는 세대교체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건재한 맨유만이 그나마 빅4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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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몰락하자 중위권팀들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강해진 중위권은 EPL의 UCL 부진에 일조했다. 엄청난 중계권료는 중위권팀에 기회를 줬다. 오일달러를 물쓰듯 쓰는 맨시티는 제외하자. 토트넘, 에버턴은 언제든 빅4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웨스트브롬위치, 스완지시티 등 중하위권팀도 강팀을 잡아내고 있다. 더이상 EPL은 빅4간 맞대결로 우승이 가려지는 리그가 아니다. 빅4가 UCL에 전념하기가 힘들다.

1990년대 세리에A와 비슷하다. 당시 세리에A는 '세븐시스터즈(유벤투스, AC밀란, 인터밀란, 라치오, AS로마. 파르마, 피오렌티나)'라고 불리는 7팀이 황금기를 이끌었다. 'UCL보다 세리에A 우승이 더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강팀들이 많다보니 중하위권팀도 이들에 대응하기 위해 수준을 높였다. 세리에A는 1990년대에 리그 5~7위권팀들이 참가하는 UEFA컵(유로파리그의 전신)에서 7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EPL도 마찬가지다. 중위권이 더욱 두터워졌다. 결국 EPL의 경쟁력 강화는 역설적으로 UCL에서의 몰락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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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PL은 다시 UCL에서 부활할 수 있을까. EPL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리그다. 세리에A가 몰락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선수영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지만 리그의 재정상태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파르마, 피오렌티나는 파산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거듭되며 전체적인 수준이 하락했다. EPL은 다르다.

다음시즌 EPL의 국내 중계권료는 마지막 계약이었던 2009년보다 71% 상승한 32억파운드(약 5조3000억원)에 이른다. 해외중계권료는 더 많다. EPL은 다른 리그보다 중계권료가 3~10배 정도 높다. 지난시즌 우승팀 맨시티가 받은 중계권료는 6060만파운드(약 1000억원)다. 다른 빅리그와는 달리 EPL은 고른 분배가 원칙이다. 지난해 최하위 울버햄턴도 중계권 수입으로 3910만파운드(약 647억원)을 벌었다. EPL 우승팀과 최하위 팀의 수입차는 약 2배 정도지만 프리메라리가는 무려 15배나 된다. EPL은 중하위권의 스토크시티, 선덜랜드, 퀸즈파크레인저스 등도 이적료로 2000만파운드(약 330억원) 이상을 쓰는 리그다. 올시즌 UCL서 실패한 맨시티와 첼시는 내년시즌 부활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돈이 있다. EPL의 황금기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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