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개를 죽어라 던졌다.'
올시즌 현재 4강을 형성하는 두산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스윕을 당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4강 팀 가운데 지금까지 특정팀과의 3연전에서 싹쓸이 패배를 한 번도 허용한 적이 없는 팀은 23일 잠실에서 맞붙은 두산과 넥센 뿐이다.
9개 팀 전체로 넓히면 SK만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번 주중 3연전에서 2연패를 먼저 당한 뒤 이날 넥센을 만난 두산은 연패 탈출 만큼이나 간절했던 게 스윕 회피였다.
앞서 2연패를 하는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 김진욱 두산 감독은 이날 경기 전 마운드에 열쇠가 달려있음을 시사했다.
야수들의 타선은 그런대로 점수를 뽑아줄 만큼 뽑아주는데 마운드가 얻는 것 이상으로 내주는 바람에 답답하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투수코치를 지낸 투수 출신이니 그 답답한 심정은 더했다. "투수 출신 감독이 마운드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이번 주말 4일 휴식을 거치면서 선발 로테이션을 재정비해야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선발진 정비야 나중 문제이고, 일단 이날 넥센전에서는 더이상 연패를 허용하지 않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가 않았다. 지난 21일 7대15로 대패할 때 무려 7명의 불펜진을 끌어다 썼고, 22일 경기(4대8 패)서도 니퍼트가 개인 최다 7실점으로 5⅓밖에 버티지 못하는 바람에 21일 투입되지 않은 불펜 3명을 가동해야 했다.
김 감독으로서는 투수 운용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넘어 산이라고, 23일 넥센전 선발 노경은은 넥센과의 통산 상대전적에서 14경기 4승1홀드2패, 평균자책점 2.56으로 양호했지만 최근 3연패로 운이 없었다. 두산전 4연승으로 자신만만한 넥센 선발 나이트에 비하면 꿀리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노경은이 김 감독의 작은 구세주 역할을 했다. 김 감독 입장에서 넥센전 스윕을 피하기 위해서는 노경은이 가능한 오래 버텨주는 게 필요했다. 불펜에 믿음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경은은 김 감독의 이런 마음을 잘도 읽었다. 6⅔이닝 동안 3안타-7사4구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탈삼진 9개를 엮어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무엇보다 노경은은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무려 128개를 던졌다.
노경은이 한 경기에서 128개 투구수를 기록한 것은 생애 처음이다. 종전에 121개를 2차례 기록했을 뿐이다.
김 감독이 노경은의 투구수가 한계치를 넘어서는 데도 교체할 수 없었던 것은 침체된 마운드에 기를 살리고 이기고 싶은 절박함과 노경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경은은 최근의 연패 탈출에 사활을 건 듯 볼넷으로 위태할 듯 하면서도 악착같이 넥센 타선을 제압했다. 7회 투구수 124개가 넘어서면서 두산 벤치에서 교체 의사를 타진했지만 그래도 버텼던 노경은이다. 결국 볼넷 추가로 128개까지 채운 뒤 마운드를 내려간 노경은은 다실점으로 위기에 빠진 두산 마운드에 희망 메시지를 던져줬다.
노경은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요건을 만든 뒤 강판됐지만 동점 이후 연장 승부 끝에 팀이 2대1로 승리한 것에 만족했다.
후속 계투 오현택의 실점으로 승리가 날아가기는 했지만 노경은의 128구 투혼은 두산의 연패 탈출을 이끌어준 징검다리였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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