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계를 흔든 승부조작 사건의 핵심은 '양보씨름'이다.
양보씨름은 오랜 기간 씨름계에 만연해 있던 악습이다. 기량이 좋은 선수가 오랜 기간 대회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에게 경기를 져주는 형태다. 잘못된 미덕으로 암암리에 이뤄져 온 거래다. 한때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으나,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경제 위기가 겹쳐 팀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설 자리를 잃은 씨름 선수들의 서글픈 자화상이었다. 대한씨름협회는 지난해부터 씨름 중흥을 위한 정정당당한 승부를 강조하면서 양보씨름 근절 서약서를 받아왔다. 경기감독위원회를 통해 매 경기 양보씨름 여부를 가려내고 있다.
양보씨름의 뿌리는 여전히 깊었다.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전해지면서 치부가 세상에 드러났다. 안태민(26·장수군청)과 장정일(36·울산 동구청)은 지난해 1월 22일 전북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12년 설날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90㎏이하급) 결정전에서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18일 전주지검에 구속됐다. 2009년 실업 입단 후 장사 타이틀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안태민은 체급 강자인 장정일로부터 승부를 양보 받는 조건으로 장사 상금 일부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씨름계 관계자는 "선수들이 검찰 출두 요청을 받은 뒤 팀 관계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나서 해당 팀에서도 사실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며 "아무리 어려웠어도 해선 안된 짓을 했다"고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은 1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관련 정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해당선수 영구제명 등 강력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씨름협회의 대응 천명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확대되는 분위기다. 전주지검 수사 결과 해당 선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선수 및 관계자 연루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일각에선 장사 타이틀을 얻은 선수의 상금 20%를 해당팀 지도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한 규정과 씨름협회의 대회 감독 및 운영 능력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를 양보씨름 사태의 근본으로 꼽고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또다른 '양보씨름'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그런 일(조직적인 승부조작)은 없을 것으로 믿고 있다"며 "그동안 선수와 지도자 모두에게 승부조작 방지 서약서 등을 받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런 일이 벌어져 심히 당혹스럽다. 경기 감독위원회 활동 및 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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