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이글' 이근호(30·엘자이시)의 현재다. 지난해 9월, 상주 상무 전역과 동시에 카타르 엘자이시로 이적한 이근호는 '월드컵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9개월만인 지난 5월 26일, 카타르에서 첫 시즌을 마친 이근호는 인천공항을 통해 조용히 입국했다.
힘겨운 한 시즌이었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더이상 태극마크도 없었다. 2일 스포츠조선과 만난 이근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며 새 출발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변해야 산다
이근호의 소속팀 엘자이시는 올시즌 카타르 스타스리그 3위를 차지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따냈다. 컵대회에서는 두 번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근호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이근호는 리그 18경기에 출전해 2골-6도움을 기록했다. 반면 이근호와 주전 경쟁을 펼친 브라질출신의 호마리오는 16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근호의 카타르 첫 시즌은 '완벽한 실패'였다. 원인이 명확했다. 카타르의 축구 스타일에 적응에 애를 먹었다. 이근호는 "카타르의 리그는 팀보다 개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스타일이다. 공격수들이 욕심을 내다보니 K리그나 J리그보다 내가 볼을 잡을 기회가 많지 않다. 감독님이 더 과감하게 하라고 했는데 노력했지만 부족했다. 호마리오가 잘하니 내가 설 자리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근호의 플레이스타일이 카타르 축구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동료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이근호의 '헌신'은 주목받지 못했다. 카타르에서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공격포인트'로 내려진다. 그러나 내년 시즌 그는 변화로 정면 돌파를 시도할 예정이다. 이근호는 "카타르에서는 철저히 득점을 위해 뛰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내년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스타일에 변화를 줘서라도 골을 많이 넣겠다"고 했다.
▶월드컵과 내리막
이근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월드컵 스타'에 등극했다. 월드컵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엘자이시에 진출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월드컵 출전과 활약이 결국 독이 됐다. 이근호는 "월드컵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카타르리그도 안이하게 생각하고 진출한 것 같다"면서 "지난 한 시즌동안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많이 반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표팀 탈락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지금 대표팀 얘기를 하면 내 욕심이고, 말도 안되는 얘기다. 경기에 뛰고,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공격 포인트를 올려야 한다. 그리고 감독님이 판단하시는 것이다. 순서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는 게 먼저다"라고 답했다. 이근호의 두 번째 월드컵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시선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향해있다.
▶'기부천사'로 거듭나다
이근호는 2일 서울 종로구 푸르메센터에서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 건립기금 4000만원을 전달했다. 이어 2011년 경기 도중 심장 마비를 일으켜 쓰러진 뒤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청소년-올림픽대표팀 '후배' 신영록에게도 재활 치료 성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스포츠용품 업체인 미즈노와 후원 계약을 4년 연장하며 얻게되는 수익금 전액을 축구 꿈나무들에게 기부한 그는 매해 기부금 액수를 늘려가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직접 살필 계획이다. 기부금 전달식을 마친 뒤 스포츠조선과 만난 이근호는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운이 따랐다. 이제 내가 받은 행운을 주변에 돌려줄 시기라고 생각했다. 더이상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했다"며 기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기부가 소중한 만남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영록이와 5년만에 만났다. 2011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영록이와 대결(감바 오사카vs제주 유나이티드)을 펼쳤다. 당시 일본에서 같이 밥도 먹고 했는데 쓰러진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영록이가 '형'이라고 부르는 순간 뭉클했다. 매해 꾸준히 도움을 주고 싶다.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