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경쟁은 언제나 아름답다. 무르익어가는 가을, 우정으로 빛날 경쟁이 기다려진다.
프로 입단 동기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가을 잔치에서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와 SK 와이번스 정의윤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팀을 대표하는 4번타자로 출전해 우정의 방망이 솜씨를 뽐낸다.
두 선수는 지난 2005년 나란히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을 친 박병호는 신인 1차 지명을 받았고, 부산고를 졸업한 정의윤은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LG의 선택을 받았다. 둘 다 7월생으로 고교시절부터 돈독하게 우정을 쌓아온 사이다.
그러나 프로에 들어와서는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박병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LG에서 단 한 번도 주전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타고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한 장타력은 인정을 받았지만, 마땅하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프로 입단 후 2010년까지 1군서 올린 성적은 타율 1할9푼2리, 24홈런이다. 그에 비하면 정의윤은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LG 시절인 지난 2013년에는 타율 2할7푼2리, 5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중심타자로 성장할 수 있는 모습을 잠시 보여줬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입단시 받았던 기대만큼의 잠재력은 드러내지 못했다.
먼저 변신에 성공한 것은 박병호다. 박병호는 2011년 7월 넥센 히어로즈로 옮기면서 거포의 품격을 제대로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해 박병호는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직후 12개의 홈런을 치며 4번타자 자리를 꿰찼다. 마땅한 중심타자가 없던 넥센은 박병호를 4번타자로 내세우면서 강력한 타선을 꾸릴 수 있었다. 박병호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거머쥐며 이승엽 이후 최고의 홈런타자로 성장했다. 설명이 필요없는 프로야구 대표타자다. 올시즌이 끝나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 예정이다.
정의윤 역시 지난 7월 24일 SK로 옮기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SK가 정의윤을 영입한 것은 오른손 대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주전 선수층이 탄탄한 SK에서 정의윤이 당장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올시즌 내내 중심타선의 폭발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던 SK는 8월 들어 정의윤을 4번타자로 내세우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득점 루트가 다양해지고 대량 득점을 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정의윤은 붙박이 4번타자로 자리를 잡았다. SK가 시즌 막판까지 이어진 힘겨운 5위 싸움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정의윤이다. 그는 SK로 이적한 뒤 59경기에서 타율 3할4푼2리, 14홈런, 44타점을 때렸다. 4년전 박병호가 그랬던 것처럼 정의윤도 변신에 성공한 셈이다.
올시즌 박병호는 53홈런, 146타점을 때렸다.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낸 박병호는 이번 포스트시즌이 국내에서 보내는 마지막 가을잔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의 목표는 우승이다. 정의윤을 포스트시즌 첫 무대서 만나게 된 것 또한 그는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정의윤은 이번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보고 배우는 무대다. 특히 '절친' 박병호가 그의 눈에 부각될 것이 분명하다.
정의윤은 시즌 막판 맹활약을 이어갈 즈음 박병호와 함께 거론되는 것에 대해 "병호는 한참 위에 있는 선수다. 내가 병호랑 함께 이름이 나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넥센과의 경기에서 정의윤이 출루할 경우 1루수 박병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두 선수 모두 밝은 표정으로,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다. 두 선수의 맞대결 자체만으로도 이번 가을잔치 분위기를 잔뜩 만끽할 수 있을 듯하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