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괜찮아요. 꼭 삿포로 가고 싶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승훈(29)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자타공인 '장거리 간판' 이승훈은 불의의 부상을 입었다. 그는 1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6~2017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 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팀추월에서 오른정강이를 부상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한 이승훈은 여덟 바늘을 꿰맸다. 테스트 이벤트는 물론이고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출전도 불투명했다. 빙상연맹 관계자가 "살이 패였다. 통증이 심하다"며 "삿포로 출전 여부는 잘 모르겠다. 더 중요한 평창동계올림픽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승훈은 삿포로 대회 출전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그는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한 만큼 삿포로에서는 더 잘해야죠. 몸 상태에 따라 출전 종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팀추월과 매스스타트 만큼은 꼭 나가고 싶어요"라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힘겹게 오른 삿포로행 비행기. 트랙 위에 선 이승훈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야말로 부상투혼. 결과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그는 20일 펼쳐진 남자 5000m에서 6분24초32를 기록, 아시아기록을 세우며 정상에 섰다.
기세를 올린 이승훈은 22일 펼쳐진 1만m와 팀추월에서 연달아 정상에 서며 환하게 웃었다. 2011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던 이승훈은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 3개를 쓸어 담으며 동계아시안게임 한국인 최다 금메달(종전 5개 안현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승훈의 질주는 계속됐다. 그는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도 '금빛 질주'를 펼쳤다. 올 시즌 매스스타트부문 세계랭킹 1위인 이승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레이스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이승훈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동계아시안게임 한국인 최다 금메달 기록을 갈아치웠다. 동시에 한국 선수 가운데 동하계 아시안게임을 통틀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을 누렸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장거리 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을 누렸던 이승훈은 어느덧 '기록의 사나이'를 넘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가 돼 가고 있다.
오비히로(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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