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여자쇼트트랙의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훈련 시간 과묵한 편이다. 보통 휴식시간 선수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그러나 지난 5일 강릉선수촌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올림픽 모드로 전환한 뒤에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홀로 천장을 쳐다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 선수들이 잠깐 말을 걸면 대화에 참여할 뿐 계속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한다.
홀로 짊어진 부담이 크다. 지난 10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펼쳐진 대회 쇼트트랙 여자 500m를 통해 그 이유가 드러났다. 최민정 혼자 예선에서 살아남았다. 심석희(21·한체대)와 김아랑(23·고양시청)은 준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둘은 피지컬이 좋은 유럽과 북미 선수들에게 스타트부터 뒤졌다. 스피드도 살아나지 않으면서 역전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정은 달랐다. 지난 D-30 미디어데이 때 가진 인터뷰에서 올림픽 전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았던 '스타트'와 '스피드'는 몰라보게 향상된 모습이었다. 그녀의 '업(UP)'된 스피드는 3000m 계주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23바퀴를 앞두고 이유빈(17·서현고)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지만 쏜살같이 달려온 최민정이 바통을 이어받은 뒤 캐나다, 헝가리, 중국과의 간극을 좁혀나갔다. 남자 선수들도 신경을 써서 레이스를 펼쳐야 할 수 있는 8초대 랩타임을 찍으면서 넘어지고도 1위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스타트도 남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듯 했다. 김문정 대한빙상연맹 비디오 분석관은 "최민정은 그 동안 영상을 통해 스타트 공부를 많이 했다. 자신의 영상과 외국 선수들의 영상, 남자 선수들의 영상을 비교하면서 자세도 교정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도 "시즌 전 컨디션 조절이나 스피드 업을 한다. 그런데 내가 본 것 중 이번 500m를 준비하면서 기록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본인 스스로도 만족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1일 강릉영동대 쇼트트랙 연습장에서 열린 회복훈련에서도 최민정은 남자 개인종목에 출전 중인 서이라(26·화성시청)와의 스타트 대결에서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500m는 워낙 박빙이다. 결과 예측이 힘들다. 그러나 나름대로 준비를 잘 했다"며 "민정이의 경기가 잘 풀리고 컨디션이 좋다면 금메달을 노려볼 만 하지 않을까.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도전해볼 것"이라며 밝은 희망을 얘기했다.
기존 강력한 기술과 체력을 보유하고 있던 최민정은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스피드와 스타트 능력까지 갖추면서 이제 '천재'에서 '괴물'로 변신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유일한 벽이었던 500m만 넘으면 동·하계올림픽 사상 전무후무한 4관왕도 불가능이 아니라는 평가다.
빙판 훈련이 끝난 뒤에도 가벼운 러닝 등 지상훈련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려 했던 최민정, '괴물'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었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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