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부산 사직구장.
3-0으로 앞서다 KIA 타이거즈에게 8점을 내준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은 17년차 베테랑 투수 윤길현(35)을 호출했다. 하루 뒤 같은 장소에서 KT 위즈와 더블헤더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 선발 투수가 무너졌지만 다가올 일정을 감안하면 불펜 소모를 최소화해야 할 승부였다. 불붙은 KIA 타선에 맞서 긴 이닝을 막아줄 투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였다.
3회초 2사 1루에서 이명우에게 공을 넘겨 받은 윤길현은 나지완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악몽같은 이닝에 마침표를 찍었다. 4회 최형우, 안치홍, 김주찬을 범타 처리하며 삼자 범퇴로 막은 윤길현은 5회 2사후 연속 안타를 맞은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2이닝 동안 25개의 공으로 8타자를 상대해 얻은 성적은 2안타 1탈삼진 무실점. 연속 안타를 내주며 마운드를 내려온게 아쉬웠지만, 방망이가 폭발하면서 단숨에 승부를 뒤집은 KIA 타선을 잠재우면서 반전의 실마리를 잡게 해준 윤길현은 이날 롯데 승리의 '숨은 영웅'이라고 부를 만했다.
전반기만 해도 '윤길현도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5월이 되서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공은 밋밋했고, 볼질-난타의 연속이었다. 결국 6월 24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가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9월 4일 확장 엔트리에 맞춰 다시 1군 무대를 밟은 윤길현. 2군 무대의 절치부심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9월 7경기에 등판해 1승1홀드, 평균자책점 1.50을 기록한데 이어, 10월에도 9일 KIA전까지 5경기서 2홀드, 평균자책점 1.50을 찍었다. 한때 6.64까지 치솟았던 시즌 평균자책점은 4.73까지 떨어졌다. 여전히 전성기 시절 투구와는 거리가 있지만, 5강 경쟁 속에 기진맥진한 롯데 불펜 속에서 베테랑 윤길현이 쓴 반전 스토리는 동료,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연이은 호투에도 윤길현은 담담하다. "그동안 오랜 재활로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미안한 기색을 드러낼 뿐이었다. 고난의 시간을 딛고 다시금 마운드에 우뚝 선 윤길현의 투구는 분명 박수를 받을 만하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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