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이승기(32)의 치열했던 15년은 헛되지 않았다.
이승기는 2004년 1집 앨범 '나방의 꿈'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 후 같은 해 MBC '논스톱 시즌5', 그리고 2006년 KBS2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에 도전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위치를 완벽하게 선점했다. 그의 대표작은 2009년 방영됐던 SBS '찬란한 유산'과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MBC '더킹투하츠'(2012), MBC '구가의 서'(2013) 등으로, 출연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KBS2 '1박2일'이나 SBS '강심장' 등에서 예능적인 감각을 뽐내며 '믿보 예능인'으로서의 위치까지 차지했다. 2016년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 뒤 다음해 10월 만기전역한 후 홍자매의 작품이던 tvN '화유기'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동시에 SBS '집사부일체'의 고정출연과 Mnet '프로듀스48'의 국민프로듀서 대표로 출연하며 예능인으로의 컴백도 함께했다. '집사부일체'로는 지난해 SBS 연예대상의 대상 수상자가 되며 화려한 복귀를 완성했다.
이승기는 올 한해도 누구보다도 바쁜 한해를 보냈다. 새 예능프로그램이던 SBS '리틀 포레스트'를 론칭해 광고를 완판시켰고, 넷플릭스와 '범인은 바로 너 시즌2'부터 '투게더'까지 촬영했다. 또 지난해부터 촬영을 시작해 '1년 농사'를 완성한 SBS '배가본드'(장영철 정경순 극본, 유인식 연출)로도 완전히 달라진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가본드'는 민항 여객기 추락 사고에 연루된 한 남자가 은폐된 진실 속에서 찾아낸 거대한 국가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이승기는 극중 스턴트맨 출신이자 테러로 조카를 잃은 남자 차달건 역을 맡아 깊은 감정연기와 액션을 동시에 보여줬다.
16회를 끝으로 종영한 '배가본드'는 '수미상관'의 열린 결말을 완성했다. 차달선은 제롬(유태오)을 찾기 위해 블랙썬에 잠입해 국제용병이 됐고, 고해리(배수지)는 차달건의 복수를 대신하기 위해 제시카리(문정희)를 따라 로비스트가 되는 상상도 못한 전개가 펼쳐져 안방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최종회 엔딩에서는 차달건이 자신이 제거해야 하는 로비스트가 고해리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끝내 고해리를 저격하지 못한 채 총을 거두는 모습이 담겼다. 최종회는 13.0%(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승기는 최근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배가본드' 종영 인터뷰를 갖고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게 방송을 쭉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다. 1년을 넘게 촬영하며 '언제 방송이 될까' 싶었는데, 드디어 종영을 하니 설레기도 했다. 다행히 '배가본드'를 시도하기 전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들이 보시는 분들께도 많이 전해져서 좋은 분위기에서 끝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이승기는 '배가본드'를 통해 고난도 액션을 직접 선보였다. 대역을 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액션신을 직접 소화하며 실제감을 높였다. 이승기는 "1부가 나왔을 때에는 (액션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보기에도 다른 드라마에서 보이던 난이도의 액션은 아니어서 뿌듯했고, 이 드라마를 하기 전 두 달간 액션스쿨에서 배우들이 모여 합을 맞춘 것이 도움이 됐다. 일반적으로는 액션 배우들과 합을 맞추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배우가 직접 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배우와 배우가 직접 합을 맞췄다. 부상의 위험은 높았지만, 잘 담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고생해서 찍은 만큼 상에 대한 욕심이 있을 법도 했지만, 이승기는 손사레를 치며 "안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상이라는 것을 안 받는다는 것도 건방져보이기는 한다. '네가 뭔데 받네 안 받네를 따지느냐'고 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은 상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는 거다. 제 능력치가 대상을 받아서 엄청나게 올라갈 것도 아니고, 사람이 격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릴 때는 상을 받나 못 받나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안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과거에는 제가 '가요 예능 연기 3대상을 받겠다'고 했던 때도 있는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었나 싶다. 상을 노리는 것은 반칙인 것 같다. 다만 저는 임하는 태도에서는 여느 배우, 가수, 예능인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제가 부끄럽지 않으면 된 거다"고 소신을 밝혔다.
오랜 시간 찍은 덕분일까. 연기에 대한 이승기의 자세와 태도도 바뀌었다고 했다. "저도 군대를 다녀오고 이미지도 변했고, 제 안에서 생각하는 감성들이 변한 것 같다. 그러며 사람으로서 자신감도 생기고 이번 드라마는 감정 자체가 고조된 상태로 시작해 액션이라는 틀까지 입었기 때문에 리얼리티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과하게 놀랄 필요도 없었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연기를 최소화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만큼만 절제해 연기하다 보니 저는 좀 '부족한가' 싶었는데, 시청자들이 보시기에는 적절한 연기를 했고 적절한 수준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준 것 같다. 그 점이 예전에 보신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배가본드'는 저에게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승기는 '배가본드'를 통해 변화의 시기를 거쳤다. 이승기는 "기존의 이승기와는 다른 부분을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이승기가 로코나 멜로에 더 익숙한 배우였다면, 이 드라마를 통해 '이승기가 액션이 돼? 안될텐데'라고 했던 이들의 생각을 바꿔준 작품이 것 같다. '배가본드'를 통해 제 스펙트럼을 넓힌 느낌이라 고마운 작품이다. 저에게는 큰 선물이다"고 밝혔다.
이승기는 늘 도전을 꿈꾸는 사람. 겉으로 보기에 '실패가 없는 사람'의 이미지가 큰 이승기이지만, 그는 크게 네 번의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중 하나의 슬럼프는 지금 현재다.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이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뭔가를 보여주고 싶고 제 능력을 증명하고 싶다. 그런 것 때문에 뭔가를 배우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요즘에는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하려고 한다"며 "연예계 활동을 하다 보면 누구나 슬럼프가 온다. 모든 연예인이 다 그렇다. 저는 데뷔하고 한 번, '1박2일'을 만나기 전에 한 번, 군대 가기 전에 한 번 심하게 왔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요즘이다 요즘은 심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다른 느낌의 접근 방식이나 마인드를 다른 마음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럼프가 오면 남모르게 저 스스로 몸을 관리하기도 한다. 밖으로 알리기 보다는 그건 연예인 개개인이 가져야 하는 부분이라 그럴 마음가짐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이승기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금 이 시기'를 돌아봤다. "안정적인 시기는 없는 것 같다. 늘 중요한 시기지만, 요새는 연예인과 남자, 사람 이승기의 정체성을 잘 정립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제 삶을 살아야 하고, 누가 봐도 저는 서른이 넘은 성인이니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관과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연예인으로서는 뭘 하고, 사람으로는 뭘 할지. 닥치는 대로 다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해서 가야 하는 시기 같다."
이승기는 '배가본드'를 마친 뒤 차기작을 검토하며 휴식기를 가진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