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2025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의 첫 우승 경쟁. 우연이 아니었다.
제주 출신 고지원(21·삼천리)이 61번째 대회 만에 고향에서 KLPGA 정규투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고지원은 10일 제주도 서귀포시 사이프러스 골프&리조트 북ㆍ서 코스(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10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3개로 3타를 줄히며 69타를 기록,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2타차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1억8000만원을 확보한 고지원은 상금랭킹 19위(3억3727만원)로 올라섰다.
고지원은 통산 3승에 빛나는 '버디폭격기' 고지우(23·삼천리)의 친동생. 2023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3년 간 매 시즌 1승씩 거둔 KLPGA 강자다.
언니에 비해 고지원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작년 시드전 순위가 높지 않아 올시즌 전 경기 투어 출전권이 없다. 빈 자리가 생길 때마다 출전하는 정규투어의 '비정규직' 선수. 드림투어를 병행하는 고지원은 그동안 그저 '고지우의 동생'으로만 알려진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 겨울이 터닝포인트였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으로 비거리를 늘린 고지원은 지난주 오로라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에 이어 2주 연속 우승 경쟁 끝에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언니의 그림자 뒤에서 묵묵히 노력한 끝에 맞이한 최고의 순간.
우승 후 중계 인터뷰에서 '언니의 활약에 소외된 느낌이나 라이벌 의식'을 묻는 질문에 그는 "라이벌 의식은 없다. 소외 됐다기엔 언니가 없었으면 더 소외됐을 것"이라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언니 덕분이었던 것 같다"며 돈독한 우애를 과시했다. 고지우는 이날 3타를 줄여 최종 8언더파 공동 41위로 대회를 마친 뒤 동생의 우승을 축하했다.
이번 대회를 마치고 드림투어에 복귀할 예정이던 고지원은 이번 우승으로 올 시즌 남은 KLPGA 정규 투어에 모두 출전할 자격을 얻으며 드림투어를 조기 졸업했다. 또한 이번 우승으로 2027년까지 정규투어 시드를 확보했다.
언니 고지우의 3승에 이어 고지원도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박희영과 박주영에 이어 KLPGA 투어에서 두 번째 자매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세우게 됐다.
비로 중단되는 등 궂은 날씨 속에서 3라운드 내내 6언더파로 18언더파 단독 1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고지원은 흔들림 없는 플레이로 선두를 굳게 지켰다. 지난 대회에서 배소현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했던 쓰라린 경험이 도움이 됐다.
전반 버디 2개로 2타를 줄인 고지원은 후반 파 행진을 이어갔다. 챔피언조에서 경쟁한 노승희 윤이나가 좀처럼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 고지원은 15번 홀(파4)에서 그린 위에서의 칩샷이 짧게 떨어지며 보기 위기를 맞았지만 3.1m 파 퍼트를 성공시키며 타수 차를 지켰다. 2타 차로 추격하던 노승희가 18번 홀(파5)에서 3번째 샷을 샷 이글이 될 뻔한 멋진 샷으로 홀 바로 옆에 붙였지만, 고지원은 흔들림 없이 서드샷을 1m 안쪽에 세우며 우승 퍼트를 버디로 장식하고 환호했다. 고향 제주에서 우승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부모님과 많은 친척들 앞에서 펼친 첫 우승세리머니. "부모님 뿐 아니라 친척 사촌 다 와주셨는데 우승을 보여드려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한 고지원은 18번 홀 세번째 샷에 대해 "(노)승희 언니의 아이언이 워낙 좋은 분이라 버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도 잘 붙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쳤다"며 승부사 다운 모습을 보였다.
2022년 정식 데뷔 후 4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거친 고지원의 곁에는 부모님과 언니 등 가족 뿐 아니라, 가족 같은 후원사 삼천리가 있었다. '열심히 하고 가능성 있는 유망주를 장기적 안목에서 후원한다'는 삼천리 고유의 인재 양성 철학에 딱 부합하는 선수. 성적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언젠가 언니 고지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KLPGA 대표 선수로의 성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삼천리의 안목은 정확했다. 밝고 쾌활한 긍정의 에너지 고지원은 끊임 없이 노력했고, 우승이란 열매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윤이나 못지 않은 장타력에 정교한 퍼트 실력 까지 두루 갖춘 신예. 두 대회 연속 우승 경쟁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지원 시대의 개막을 알린 하루였다.
고지원은 인터뷰 말미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우선 감사드리고픈 분들이 있다"며 "삼천리 이만득 회장님과 고문님, 임직원 분들,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믿고 후원해주셔서 진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진심을 전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 없는 추격을 한 노승희는 이날 3언더파 69타로 최종 19언더파 269타로 단독 2위로 대회를 마쳤다. 디펜딩챔피언으로 타이틀 방어 차 귀국한 윤이나는 퍼트 난조 속에 2타를 줄이는 데 그치며 17언더파 271타로 이다연과 함께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 달여 만에 대회에 나선 박성현은 5언더파 67타로 최종 14언더파 274타, 공동 11위로 희망을 채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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