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자존감 회복 방안에 대한 사회적 고민 절실"
"정년연장·연금개혁 등 논의구조 기성권력 중심…합의 이끌어낼 리더십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9일 "'쉬었음' 청년들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낙인효과가 결합한 결과"라며 "이를 단순히 청년들의 '눈높이'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하고, 중소기업에 가는 것이 마치 패배자가 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눈이 높아서 만족을 못 한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소리"라고 꼬집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9월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은 40만 명을 웃돌았다. '쉬었음'이라는 말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사회 진입의 좌절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청년 대부분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데, 우리 사회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너무 크고 실제 중소기업 노동자를 비하하는 풍조가 만연하다"며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의 좁은 통로만 '성공'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곧바로 낙인이 찍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대기업·공공부문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중소기업에서도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격차가 너무 벌어져 상위 집단에 들지 못하면 '패배자'로 불리는 등 내가 일하는 직장이 나의 자부심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실 속에서 청년들에게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확립 등 노동시장 전반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축소된 지역 주도형 일자리 사업이나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의 복원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청년들의 자존감 회복 방안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젊은 세대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노동자도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자조적 커뮤니티 등을 활성화하는 데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 고용 문제와 함께 정년연장, 연금개혁 등 미래세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현안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김 위원장은 "논의 구조 자체가 기성권력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논의가 조직화하고 권력화된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청년세대,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의 우려와 부담이 객관적으로 반영되지 못한다"며 "본질적으로 미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정치의 부재가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국회 정년연장특별위원회 등 여러 노사정 협의체에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하다고 그는 평가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정년연장과 관련해서도 청년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노사가 각자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만 삼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법적 정년 연장은 필요하지만, 연공급 임금체계를 숙련도를 반영한 직무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회에서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고려한다면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계는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해도 신규 채용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법적 정년연장을 하면 신규 채용을 축소할 것이라 맞서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별 노사관계에서는 양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상층부에서 진행하는 사회적 대화에서는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에서는 매번 당장 하지 않으면 시급한 시기에 닥쳐 노사가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해당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임금체계를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정년이 연장됐을 경우 일정 기간 임금 상승을 유보하고, 그 상승분만큼 신규 채용에 투입하는 등의 논의가 가능하다"며 "지금은 노사 모두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한 방향으로 끈질기게 합의를 이끌어낼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밖에 최근 청년들이 많이 종사하는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4대 보험, 최저임금, 분쟁조정 등 모든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돼 있다"며 "근로자 추정원칙을 통해 편법고용을 근절하는 것과 함께 고용관계 밖에서 일하는 시민 모두에게 안전망을 만들기 위한 법제화 같은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위원장은 청년들에게 "자신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폄하하기 너무나도 쉬운 사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존엄한 인간인 만큼,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격차 때문에 스스로 인격이 훼손된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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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