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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선발 고원준(22)이 SK 타선의 핵 최 정(25)을 맞혔다. 사구도 웬만한 사구가 아니었다. 4회초 첫 타자로 나서 왼쪽 어깨 부근을 맞은 최 정은 한 동안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했다. 140㎞ 정도의 스피드로 날아온 공이 왼쪽 어깻죽지 뒷편 살이 없는 부분에 정통으로 꽂혔다. 맞고 튕긴 공이 바로 옆에 떨어질 정도로 충격을 최 정이 고스란히 다 받아냈다.
최 정은 원래 사구가 많기로 유명하다. 2005년 데뷔 이후 2007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사구를 기록했다. 2009년과 지난해 사구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사구로 포스트시즌 통산 11사구를 기록, 공필성(롯데 코치)과 함께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사구 타이가 됐다.
투수에게 최 정은 매우 부담스럽고 까다롭다. 힘과 정교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게다가 타석에서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는 편이다. 또 몸쪽 공을 피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투수는 최 정을 상대했을 때 몸쪽 공 제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최 정도 이날은 고통을 참지 못했다. 특히 아픈 부위가 있다. 엉덩이나 허벅지 같이 살이 많은 부분은 그래도 괜찮다. 손목이나 얼굴, 어깨 처럼 살과 뼈가 거의 밀착돼 있는 부위는 통증이 엄청나다. 최 정은 4회말 수비를 하는 도중에도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을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렸다.
투수가 후배이고, 맞은 타자가 선배일 때 감정 싸움이 생기기 더 쉽다. 이번 시즌 한화 김태균(30)과 롯데 김성배(31)가 사구 이후 벤치클리어링을 벌인 경우는 좀 특이한 사례다. 맞은 김태균이 김성배가 선배인지를 모르고 사과를 요구하다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이날 최 정과 고원준 누구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살벌한 전쟁에서 서로 사이좋게 이해한다는 식의 인사를 나누다 보면 상황이 우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덤벼드는 양쪽 팀의 동료들 눈치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토톡 무시무시한 사구를 꽂고도 서로간에 눈빛 교환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까지 평화롭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투수와 타자가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빚으면 심리적으로 투수에게 절대 불리하다는 야구계의 통설이 최 정의 다음 타석에서 증명됐다.
고원준은 6회초 다시 최 정과 맞대결 했을 때도 초구에 몸쪽 바짝 붙는 공을 던졌다. 최 정은 깜짝 놀라 피하면서 또 주저앉고 말았다. 이번엔 주저앉은 채 마운드의 고원준을 노려봤다. 고원준은 이번에도 모른척 했지만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양승호 롯데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고원준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고원준은 이후 제 공을 뿌리지 못했다. 최 정은 중전 안타를 쳤고, 롯데는 1사 1,3루 위기를 맞았다. 고원준은 강판됐다.
사구로 인해 최 정은 어깨를 다쳤지만, 고원준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셈이다.
부산=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