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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민은 지난 98년 요미우리 시절 올스타전에 출전해 팔꿈치 인대를 다치면서 운명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2000년 5월 1군 복귀전이던 야쿠르트전에 등판한 조성민. 스포츠조선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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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은 신일고 시절 최고의 유망주였다. 휘문고 임선동, 경기고 손경수와 함께 고교야구 '빅3'로 불리며 고려대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도 조성민은 임선동 손경수 박찬호 등과 함께 국가대표 단골 멤버로 국제대회에 참가해 명성을 드높였다. 96년 고려대를 졸업한 조성민은 당시로는 신인 최고 수준이었던 계약금 1억5000만엔에 8년 계약을 맺고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조성민의 야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것은 팔꿈치 부상이었다.
입단후 2년 가까이 2군에 머물러 있던 조성민은 97년 후반기, 마무리 투수 마키하라가 부상으로 빠지자 나가시마 감독의 호출을 받고 1군에 올랐다. 조성민은 그해 1승2패, 11세이브를 기록하며 강력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어 선발투수로 보직을 바꿔 98년 시즌을 맞았다. 전반기까지 그는 7승6패, 평균자책점 2.75의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올스타에 뽑혔다. 전반기에만 105이닝을 던지면서 6번의 완투와 3번의 완봉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150㎞를 웃도는 빠른 공을 앞세워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우뚝 선 조성민은 큰 키(1m94)와 수려한 외모까지 갖춰 일본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올스타전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7월23일 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 센트럴리그가 2-3으로 뒤지고 있던 9회초, 조성민은 꿈에 그리던 올스타전 마운드에 올랐다. 센트럴리그 불펜 투수중 조성민과 요코하마의 사사키가 남은 상황에서 조성민이 먼저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성민은 이미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을 안고 있던 터라 내심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성민은 9회초를 무실점으로 넘겼고, 센트럴리그는 9회말 동점을 만들어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조성민은 이미 9회초 투구 도중 팔꿈치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대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조성민은 10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으나, 당시 센트럴리그 투수코치를 맡았던 요코하마의 곤도 감독은 등판을 지시했다. 결국 10회초 두 타자를 상대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인대가 손상된 상태에서 던진 직구 구속은 110㎞도 채 나오지 않았다.
9회초 투구할 때 조성민은 오른쪽 팔꿈치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부상 과정이 참혹했다. 조성민은 세월이 흐른 뒤 "곤도 감독이 자기팀 마무리인 사사키를 아끼려고 나에게 더 던지려고 했던 것 같다"며 부상 당시를 회고한 적이 있다.
조성민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무리한 투구로 인해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본 진출 후 관리를 받고 회복 과정을 밟았지만, 결국 98년 전반기 6차례의 완투를 하는 등 의욕을 앞세운 나머지 부상이 재발했던 것이다. 조성민은 99년 4월 인대접합수술(일명 토미존 서저리)을 받고 약 1년여간의 재활을 마친 뒤 2000년 5월 1군에 복귀했다. 하지만 예전의 구위는 나오지 않았다. 팀내에서도 조금씩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까지 받았다. 결국 조성민은 계약기간 1년이 남은 상태에서 2002년 10월 요미우리에서 퇴단하고 국내 야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조성민의 운명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98년 올스타전부터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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