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스토리] 타격왕 이현곤은 왜 평범한 선수가 됐나

기사입력 2013-01-31 09:59



야구판에서 종종 쓰는 말 중에 '애버리지(Average)'란 단어가 있다. 흔히 타율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단어 뜻에 걸맞게 '평균'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선수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기도 하다. 가령 'A라는 선수가 지금 타격감이 떨어져 헤매고 있지만, 애버리지가 있는 선수니 곧 올라올 것이다'라는 식이다. 달리 말해 선수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기도 하다.

보통 애버리지는 한 번 올라가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선수의 수준 자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타율 3할' 등의 일정 수준의 기록을 넘거나, 개인 타이틀 홀더가 되면 더욱 그렇다. 선수의 성장은 이처럼 '계단식'으로 본다.

2007년 타격왕 이현곤, 평범한 선수가 되다

2007년 타격왕 이현곤(33·NC)의 경우는 달랐다. 이현곤은 2007년 3할3푼8리로 타격왕을 차지했다. 역대 5번째 전경기 출전 타격왕이었다. 양준혁(은퇴)과 마지막 경기까지 치열한 격전을 펼친 끝에 6모 차이로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최다안타왕도 그의 몫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현곤은 이듬해 타율 2할5푼7리에 그치더니 계속 제자리 걸음을 했다. 급기야 지난해엔 6경기 출전에 그쳤다. 도대체 왜 2007년 타격왕 이현곤은 '평범한 선수'가 됐을까.

이현곤은 현재 NC 유니폼을 입고 있다. 생애 처음 얻은 FA 자격, 이현곤에겐 새 출발의 기회가 됐다. 전지훈련 전 창원으로 이사도 마쳤다. 애리조나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그가 차지한 2007년 타격왕 타이틀은 '미스테리'라고 불릴 정도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 하지만 이현곤은 가슴 한켠에 있던 얘기들을 툭툭 털어내기 시작했다.


많이 알려졌듯 이현곤은 만성 간염에 갑상선 저하증, 족저근막염까지 병을 달고 살았다. 2006년 갑상선 저하증으로 군에서 의병제대했을 정도다. 2007년 그가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을 때 '병마와 싸워 이겼다'는 극찬이 줄을 잇기도 했다.


타격왕을 차지했던 2007년 이현곤의 타격 모습. 스포츠조선DB
기대치에 대한 책임감, 결과는 추락

이현곤은 "변명 같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부상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이현곤이 타이틀을 차지했던 2007년, 팀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시즌 뒤 서정환 감독에서 조범현 감독으로 사령탑이 교체됐다.

이현곤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땐 팀 자체가 주전과 백업을 구분할 전력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빠지면 팀 전력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빠질 수 없는데 무리하게 경기에 나섰다"고 밝혔다.

분명한 책임감이었다. 이현곤은 타격왕 타이틀을 단 뒤로 그해 말 베이징올림픽 예선에 갔다 오는 등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달고 사는 병마는 체력적 한계를 가져온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는 등 몸이 뒤따라 주지 않는다.

2008년 스프링캠프, 이현곤의 발목을 잡은 세번째 질병이 발병했다. 족저근막염. 훈련 도중 오른 발바닥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어느새 퉁퉁 부었다. 우타자인 그에게 체중을 버텨야 하는 오른 발바닥이 성하지 않으니 타격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하지만 이현곤은 그때마다 부은 발이 든 스파이크를 조여 맸다. 그는 "반짝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안 좋아졌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타격폼이 흐트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몸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훈련으로 인한 성과가 나면 기분이라도 좋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경기에 나서는데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기대치가 있으니 '쉬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현곤은 갑상선 저하증 등 체력에 영향을 미치는 병을 앓고 있음에도 훈련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사진은 2009시즌 뒤 동계훈련 때 이현곤의 모습. 송정헌기자 songs@sportschosun.com
성숙하지 못했던 과거, 이젠 병마도 친구

"그땐 성숙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이현곤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병마를 이기고 전경기 출전을 달성한 2007년과 상황이 달랐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완전히 물갈이됐다. 그는 "슬기롭게 헤쳐나갔어야 했다.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코칭스태프에 변화가 있던 사실도 조금 아쉽다"고 했다.

분명 신임 코칭스태프는 이현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서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전년도 타격왕'이란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오직 기대치만 있을 뿐이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 미묘한 갈등은 이런 데서 시작된다. 이현곤도 그 과정을 똑같이 겪었다. 이후 이현곤은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갔다. 유격수에선 신예 김선빈에게, 3루수에선 일본에서 돌아온 이범호에게 밀렸다.

"운동선수에게 그런 건 어차피 다 변명입니다." 이현곤이 잘라 말했다. 선수의 기용에 대한 고유 권한은 코칭스태프에 있다. 그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프로선수로서 변명은 하기 싫었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이겨내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이내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다"며 미소지었다.

갑상선 저하증은 가끔씩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을 동반한다. 이현곤은 "사실 예전엔 부상이나 병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스스로 제약을 많이 걸었다"고 털어놨다.

NC 이적은 그에게 확실한 계기가 됐다. 11년간 한 팀에만 몸담았던 그에게 신생팀 이적은 분명한 '변화'였다. 이현곤은 "이젠 그것(부상과 병)과도 친해지려고 한다. 확실히 변화가 생기니 우울했던 감정들이 없어졌다. 지금까진 어디가 안 좋으니 이 이상하면 안 되겠다는 식으로 스스로 제약을 많이 걸었던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새 팀에서 목표는 소박했다.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게 꿈이다. 이현곤은 "몸 관리 잘 해서 많은 경기에 나갈 수 있게 하겠다. 성적은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아닌가"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는 없었다. 병마를 달고 살아도 '야구선수'인 게 행복한 그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2007년 결승타를 친 뒤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이현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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