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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들은 간혹 슬럼프에 빠질 경우 심기일전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아예 삭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머리카락 길이와 경기력 사이에 큰 상관관계는 없다. 그러나 '삭발을 한다'는 행위 자체를 통해 흐트러진 집중력을 가다듬고,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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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부진에 허덕이던 KIA가 한화의 뒤를 이었다. 2일 광주 LG전을 앞두고 올해 두 번째로 '선수단 전원 삭발'을 감행했다. 5월부터 계속 이어진 부진세를 털어내고, 다시 선두권으로 도약하자는 약속이 담긴 단체 삭발이었다.
휴식을 갖고나서도 부진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선수들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KIA의 LG전 2연패는 승패를 떠나 내용 자체가 좋지 않았다. 투타가 모두 제 몫을 하지 못했고, 수비도 부실했다.
결국 베테랑들이 먼저 움직였다. 지난해 주장을 맡았던 차일목이 먼저 2일 광주 LG전을 앞두고 삭발을 한 채 라커룸에 나타났다. 이 모습을 본 서재응과 최희섭이 "나도 하겠다"며 이발기구를 구해와 라커룸에서 직접 삭발을 했다.
선배들이 이런 결의를 보이자 후배들도 삭발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른 들판에 불이 번지듯 선수들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며 선전을 다짐했다. 그라운드에서 훈련을 하던 선수들도 틈틈히 라커룸에 들러 머리카락을 잘랐다. 휴식기에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던 최희섭과 김선빈은 불과 며칠만에 또 잘랐고, 외국인 선수 소사도 삭발은 아니었지만, 레게 스타일로 늘어트렸던 뒷머리를 깔끔하게 잘랐다. 이날 선발로 나서는 양현종은 혹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어 삭발 대열에서 일단 제외됐다.
선수들 뿐만이 아니었다. 김평호 1루 주루코치와 정회열 주루코치 등도 "너희들이 그런 뜻이라면 우리도 자르겠다"며 삭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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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KIA 라커룸의 분위기는 의외로 밝았다.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덕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가벼운 농담도 하면서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패배 의식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팀워크가 형성됐다. 일단 이 자체만으로도 '단체 삭발'은 꽤 효과적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처럼 결의를 가득 담은 '단체 삭발'까지 감행했음에도 KIA는 이날 허망한 패배를 당했다. 선발 양현종의 7이닝 무실점 호투와 타선의 집중력으로 8회까지 4-0으로 앞섰지만, 9회초 정규이닝 마지막 수비에서 믿었던 팀 마무리 앤서니가 무너지면서 4점을 허용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고 말았다. 결국 승부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10회초 LG에 1점을 헌납해 4대5로 지며 3연패에 빠졌다.
이런 선수들의 '단체 삭발'을 바라보는 KIA 선동열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날 경기 전 덕아웃에 앉아 훈련을 지켜보던 선 감독은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단체로 삭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팀 수장의 입장에서 선수들이 기특하기도 하면서도 삭발까지 감행한 것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단체삭발'을 했던 한화의 김응용 감독도 당시 "가슴이 아프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김 감독의 제자인 선 감독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을 책임지는 감독의 마음이라는 것이 다 비슷하게 마련이다. 선 감독은 "삭발을 한다고 해서 당장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부진하지만 아직은 4등인데…하지만 선수들이 뭔가 하려고 하는 의지를 보인 것 같아서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선 감독은 "나도 해태 선수 시절 선수단 분위기에 따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기도 했다. 그때는 선배들이 시키면 무조건 했던 때"라는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만약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서 성적이 좋아질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짧게 자를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마침 흰머리도 많아져서 염색할 때도 됐는데, 그냥 자르지 뭐"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농담 속에는 좀처럼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팀에 대한 선 감독의 답답한 심경이 진심으로 담겨있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