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선수들의 꿈 앗아간 15분의 짧은 비

최종수정 2013-08-06 10:01

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 68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 야탑고와 덕수고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우천으로 취소된 결승전은 6일 오후 6시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다. 야탑고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 08.05.

"아, 잠실에서 꼭 하고 싶었는데…"

제68회 청룡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겸 후반기 왕중왕전(스포츠조선 조선일보 대한야구협회 공동주최) 결승전이 열릴 예정이었던 5일 잠실구장. 결승에 진출한 야탑고와 덕수고 선수들이 각각 1, 3루 덕아웃에 자리를 잡고 경기를 준비중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경기가 취소되고 말았다. 양측 덕아웃에선 아쉬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무슨 사연이었을까.

5일 서울은 아침부터 흐렸다. 소나기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하늘은 계속해서 흐렸지만 오후 내내 비가 오지 않았다. 야구 경기를 진행하기에 충분했다. 양교 선수단은 결승전을 앞두고 차분하게 몸을 풀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경기 시작 약 45분 전인 오후 5시 15분경. 갑자기 하늘에서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비가 아니었다. 마치 하늘이 뚫린 것처럼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금세 내야 그라운드에 물이 고였다. 정말 갑작스러운 비였다. 덕수고 선수들은 당연히 경기를 치를줄 알고 경기장까지 타고 온 대절 버스를 돌려보내 한참이나 경기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15분 후인 오후 5시 30분. 주최측은 결국 경기 취소를 선언했다.

하염없이 쏟아지던 비를 바라보던 3루측 덕수고 선수들. 몇몇 선수들이 "비가 그치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경기 연기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탄성이 터졌다. 이 반응은 1루측 야탑고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 68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결승전 야탑고와 덕수고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우천으로 취소된 결승전은 6일 오후 6시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다. 취소 결정이 나자 덕수고 선수들이 짐을 싸 덕아웃을 떠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 08.05.
이유가 있었다. 덕수고 외야수 김규남(3년)은 "잠실에서 꼭 결승전 경기를 뛰고 싶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청룡기 대회는 매년 결승전 날짜를 월요일로 잡는다.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날, 결승에 진출한 선수들이 한국야구의 성지인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예선 경기 역시 일정이 허락하는 한 잠실구장에서 개최를 한다. 하지만 일정이 하루 밀리며 경기 장소를 목동구장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6일에는 두산과 넥센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목동구장을 홈으로 쓰는 넥센이 잠실 원정을 치러 목동에서라도 야간 경기로 결승전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만약, 목동에서도 프로 경기가 있었다면 선수들은 아침 일찍 맥빠진 결승전을 치를 판이었다.

김규남 역시 이번 청룡기 예선 1경기를 잠실에서 치렀다. 하지만 결승전은 다르다. 고교 선수들이 쉽게 치를 수 없는 야간경기로 개최된다. 양교 응원단도 가득찬다. 고교선수로 뛰며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추억이다. 그는 "예선전을 치러봤다 해도 꼭 잠실구장에서 결승 경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탑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송영관 야탑고 코치가 "잠실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의 긴장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기에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를 밝히는 와중에 덕아웃을 나가던 한 선수가 "아, 잠실에서 꼭 뛰고 싶었는데"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제자의 모습에 송 코치 역시 착잡한 반응을 보였다.

고교 선수들의 플레이를 매일 같이 지켜보기에 자식같은 마음이 들어 프로팀 스카우트도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조성우 롯데 스카우트 팀장은 쏟아지는 비를 보며 "프로 입단은 바늘 구멍을 통과하기다. 프로 유니폼을 입는다 해도 1군에 올라오지 못하면 끝이다. 잠실에서 한 경기도 해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오늘 경기가 꼭 열렸으면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15분 만에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는 점이다. 순진한 고교 선수들은 "다시 경기를 할 수 있겠다"며 밝은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취소결정이 내려진 후였다. 양교 코칭스태프와 관계자들은 "취소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며 선수들의 짐을 챙기게 했다. 성급한 취소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주최측 역시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경기장을 정리하는데만 최소 2시간이 필요하다는 구장 관리팀의 의견을 반영했다. 인조잔디 구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천연잔디 구장에서는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날 모처럼 2개의 방송사의 중계가 예정돼있었다. 주최측이라고 경기를 쉽게 취소하고 싶었을까.

목동구장 역시 프로경기가 열리는 좋은 구장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잠실구장 결승전'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더욱 소중한 의미였는지 모르겠다. 야탑고의 한 선수는 "내일 낮경기를 하면 될텐데"라고 말했다. 덕수고의 한 선수는 "그냥 내일 홈 경기장에서 경기한다고 생각하자"며 동료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15분의 비가 고교선수들의 꿈을 앗아가고 말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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